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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ㅣ 욜로욜로 시리즈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17년 7월
평점 :
<알로하 나의 엄마들>로 처음 만난 이금희 작가의 분량 넉넉한 장편소설이다. 그의 서사는 허술함이 없이 촘촘하면서도 막힘없이 흘러간다는 걸 알기 때문에 두께에 전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읽히는 게 아쉬울 뿐이다.
역사소설은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 시대적 거리감에 나도 모르게 안도하고 즐기기만 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 사회의 변화가 얼마나 지난한지, 또 얼마나 허무하게 뒤집히는지 현재 목격하는 중이면서도.
전형적인 인간형이 아니라, 생생한 욕망과 이익에 쉴 새 없이 흔들리면서도 몸을 바로 일으키는 서사가 좋다. 나의 억울함과 무결함, 상대의 결함과 부족한 점을 한사코 특징지으려는 유혹에 책과 더불어 저항하는 기분이다.
간단하지 않은 서사가 잘 만든 퍼즐처럼 유쾌하게 결합하고, 인물들 간의 대조와 대비가 유동적으로 충돌하고 섞이기도 한다. 읽기 시작하면 다 못 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친일 귀족의 딸과 종의 회오리 같은 다큐영화 같기도.
구상 후 10년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는 고된 작업이 작품 속 인물들을 모두 살려내어 인터뷰를 한 시간이었나 싶게 현실감 있는 이야기다. 아름답고 완성된 예술품을 본 듯한 즐거움은 수많은 답사를 통해 작가가 직접 본 장소들을 시대적으로 제대로 구현한 덕분일 것이다.
70여 년 전에 수남이 집을 떠나 나라를 떠나 대륙을 횡단하고 저 먼 지구 반대편에 도착한 여정을 따라다니다 보니, 이젠 주말 외출도 버거워하는 내 일상에 헛헛한 웃음이 난다.
여성 서사가 반갑고 귀하다. 근력과 무기를 내세운 남성 가해자들의 폭력과 살해가 빈번하니 자꾸 움츠러드는 정신이, 작품 속에서 함께 벽을 부수고 뛰어넘으며 격하게 삶을 전면적으로 살아본다. 제목만 보고 슬픈 상상을 했는데, 그렇지만은 않아서 큰 위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