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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수학 좀 대신 해 줬으면! - SF 작가의 수학 생각
고호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6월
평점 :
십 대 아이들이 열광할 제목에, SF장르를 좋아하는 내게 더없이 흥미로울 SF 작가가 들려주는 수학이라서 책을 만나기까지 무척 궁금했다. SF는 판타지와는 달리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 논리적 전개가 필요하다. 당연히 수학 언어와 수학적 사고법과도 밀접하다.
가장 기대하는 점은 십 대 아이들이 수학과 과학을 격렬하게 미워하고 다 포기하는 대신에 재미와 흥미를 조금이라도 느끼는 것이다. 현행 입시체제를 그대로 두고 학과목이 좋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배움의 방식과 학문 자체를 구분해서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수학 공식, 개념, 관련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주는 내용일까 했던 짐작은 크게 어긋났다. 작가의 창작 아이디어 노트를 펼쳐본 기분이다. 역시! 과학적 상상력에 집중하는 SF 작가가 생각할 법한 ‘수학 소재들’이다. 어떤 질문들은 낯설고 엉뚱해서 재밌고, 다른 질문들은 진지하고 묵직해서 흥미롭다.
신기하고 즐겁게 읽다가 문득 저자가 실은 수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렇게 수학 생각만 하는 일상이라면 분명 관련 전공이나 특별한 애정이 있을 테니까. 검색 결과는 내 짐작보다 방대했다. 이 책은 재미있지만, 재미로만 읽을 책이 아니라는 감탄을 새롭게 한다.
나는 물리학 전공자이고, 학창시절 동안 수학이 편했다. 게으른 편이라서 열심히 외워야하는 과목들보다, 한 챕터에 하나의 공식만 이해하면 되는 수학과 물리학이 편했다. 교과서 한 권당, 열 서너 개의 공식만 알면 끝. 물론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비난과 거부반응이 돌아오곤 했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 없다.
이해가 깊거나 수학과 과학을 특별하게 일상에 잘 활용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문제나 생각거리에 직면했을 때 가능한 뜨겁지 않게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파악하고 이해해보려 애는 쓴다. 사기를 당하거나 광고에 잘 속지 않는 것은 그 덕분인지도. 비법이나 특효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반백년 가까이 살다보니 진심으로 세상에는 수학보다 어려운 일이 더 많다고 믿게 되었다. 동일한 언어로 하는 의사소통조차 수학문제풀이보다 더 헷갈리고 오답이 많으니까. 그러니 수험점수에 미래를 저당 잡힌 수험생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어른들은 수학에 더 이상 겁먹지 말자.
저자처럼 다정한 시선과 설명으로 수학을 새롭게 만나게 해주는 이도 있고 대중과학서도 점점 더 친절해지고 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이언스북스 블로그를 찾아가서, 아름다운 오일러 공식이 담긴 - PC와 테블릿 버전에서 보입니다 - 배경화면 파일 선물을 얻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개인적 불안인 나의 노후를 수학적으로 대비할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고, 전지구적 위기인 전쟁과 지구 가열(warming 대신 주체가 선명한 heating을 사용하기로 함), 인간에게 친화적이지 않은 기후에 대한 수학적 해법은 무엇일지 무겁게 읽었다. 함께 고민하는 이가 있다는 것이 뾰족했던 기분을 다독여준다.
한탕주의가 기세인 사회이지만, 몸의 근력을 키우듯 뇌의 근육도 꾸준히 키우는 공부가 가장 단단하고 가장 빠른 학습법이다. 물론 내내 어렵고 힘이 든다. 누구보다 잘 아는 저자가 그래서 동기부여를 돕기 위해, 때론 기꺼이 재미있게 공부하도록 도우려고 이 책을 채워나갔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이니 참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