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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1~3 세트 - 전3권
현기영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평점 :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안다고 생각한 역사를 새롭게 배우고 재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1978년 작인 <순이 삼춘>을 1990년대에 읽고 제주 4.3을 배웠습니다. 2023년에 다시 그의 작품 속에서 제주와 한반도를 만납니다. 책 세권에 제주섬이, 한라산이 담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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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분량이 가장 많다. 70만자의 무게를 일부 맛볼 수 있는 오랜만의 대하소설이다. 5.18을 보내며 더 확실해졌지만, 역사를 부정하는 정권 덕분에, 살았던 시간은 어쨌든 모두 기록된 역사라고 고민 없이 내린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확실히 깨닫는다.
“그 사건의 기억은 노인에게 불가항력의 절대적 존재였다. 그 사건에 대해 발설한다는 것은 반세기 넘도록 무서운 정치적 금기였고, 그것이 어느정도 풀린 지금에도 노인은 닫힌 입을 좀처럼 열려고 하지 않았다.”
희생자만이 아니라 생존자와 유가족과 관련된 모두에게도 무례한 생각이었다. 고작 수십 년 고작 백여 년, 기억하고 살아계신 분들도, 더 깊어지는 상처를 치료도 못하고 싸안고 사는 분들 생각을 서투르게 건성으로 하며 살았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못 다한 삶을 내가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살았주.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도 이 세상을 절반밖에 못 산 것 같아. 절반을 4.3에 묶여 딴 세상에 살았으니.”
올 해 5.18을 보내며, 10.29. 4.16, 제주4.3, 일제강점기... 역사는 그렇게 이어지며 권력들의 속성과 희생자를 만드는 패턴과 마땅히 존재해야할 공권력의 부재로 인한 희생을 한 줄기 흐름처럼 다시 가르쳐주었다.
이 책은 제주의 신화로 시작하는 제주의 역사이자 한반도의 역사일 것이다. 배워도 부족한 한국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누구에게라도 식민지와 근대의 촉발과 이후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어 현재 내가 선 이 자리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글을 쓸 수가 없었어. 먼저 그 참사에 대해서 쓰지 않고서는 다른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거라! (...) 모든 것이 헛것이고 그 사건만이 진실인데, 그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그건 당최 무서워서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던 거다……”
여러 해 전 친구의 지인이 티베트여행에서 돌아와 제주 중산간에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핑계 삼아 친구와 함께 제주로 향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처음 묵은 중산간의 나무집은 틈마다 산바람이 들락거렸고, 머무는 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숲 길 산책을 다니면 산 사람보다 봉분이 더 많이 보였다.
헛것을 본 것인지 어둑한 집을 만났는데, 커피도 팔고 술도 판다고 했지만, 술장고를 보여준 주인은 곧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타 연주를 했으며, 우린 불청객처럼 앞뜰 의자에 앉아 직접 꺼낸 맥주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마시며 해질 때까지 얘기하고 스케치를 했다.
이틀 후에는 어떤 소문이 났는지 일면식도 없는 동네분들이 찾아와 초등학교에서 공연을 한다고 같이 보러 가자했다. 제주 말로 펼쳐진 공연 내용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제주방송에서 요청한 인터뷰까지 했다.
그때 만난 분들을 다시 이 작품에서 뵙는 듯하다. 그때는 몰랐던 사정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듣는 듯하다. ‘그 사건’으로 인해 꿈도 말도 잊고 잃고 산 세월 속에서 제주는 휴양 관광지와 특산물을 관리하고 생산하는 육지인들의 서비스 공급지로 살아왔다.
눈물을 닦으며 프롤로그를 읽고 물도 안 마시고 1부, 2부를 읽었다. 해가 밝게 들이치다 가려지는 동안 시선의 뿌리가 책에 박힌 듯 고개를 들어올리기가 무거웠다. 읽기의 즐거움도 잊고 책장만 넘겼다.
“화나지 않았는데도 화난 것처럼 큰 소리로 말하고, 툭툭 말을 토막 쳐 거칠게 내뱉는 사람들. 거친 땅, 거센 바람의 풍토가 그렇게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바람을 뚫고도 들리도록 목소리가 높고, 바람에 말끝이 날아가지 않게 연결어미가 축소되었을 것이다.”
제주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아는 바가 좀 더 많았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누가 실존 인물이고 허구인지 다 분간할 수 없지만, 저자가 관련 사료를 대량 조사/참고하셨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품 설정처럼 현실에서도 증언을 바탕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이 새롭게 시작되면 좋겠다.
“그건 천하 인간 세상에 없던 일이여. 바로 지옥이주, 지옥! 아무리 내가 말해주어도 느네들은 당최 모른다게. 당해보지 못한 너네들이 어떵 그 엄청난 걸 이해할 것고. 모르고서는 좋은 영화 못 만들주.”
‘해방’이 되었다. 길고 긴 강점기를 벗어난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이 아프도록 활기차다. 이름도 찾고 땅도 찾고 문화도 신(神)도 찾는다. 제주하르방 말고 제주풍신 영등할망을 알게 되어 기쁘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많지만 살아남은 이들이 만끽할 환희의 날들이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후대에 태어난 탓에 역사를 조금 안다는 것이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서글펐다.
해방의 감격으로 새 학교들을 많이 만들고, 배워서 알아서 힘을 키워 살아야한다고 믿었다. “망각을 강요당했던 제 나라 역사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소설인데 논픽션처럼 읽고 있는 독자로서의 내 태도를 스스로 경계하려 하지만 멀지 않은, 현재도 일면 진행 중인 역사라 필요한 거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미군정이 친일파를 고용한 것, 잠시 숨죽이던 친일파들이 제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분풀이를 시작한 것,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하는 국제정세와 외교의 계산법을 모르고 해방군으로 오인한 것,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고, 조선 사람 조심하자!”란 문장은 나도 어릴 적에 조부모님 이야기 속에서 듣던 내용이다.
제목은 짐작한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었다. 독립국 탐라 제주가 육지의 왕조에 복속되고 나서, 여러 차별을 당하면서도 잊지 않던 자치공동체의 정신이었다. 집중된 권력의 부침에서 자유롭게 우리끼리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육지의 샘은 지상으로 흐르나 제주의 샘은 지하로 흘러 용천하는 것처럼 도저히 흐르던.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우다.”
불안한 정세에 더해 재난이 겹쳐오는 상황은 소설의 배경이자 역사적 사실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메마르게 한 육십육일간의 가뭄, 땅도 바다도 가물었다. 기아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모진 흉년을 만나 굶주리며 “해방이 곧 밥 먹여주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했다.” 무역 통제, 터무니없이 비싼 관세, 친일파와 떨거지들이 다 차지한 일자리, 호열자(콜레라) 내습.
“친일파 세상이 되어부렀어. 말깨나 할 만한 젊은 놈들은 허구한 날 쫄쫄 굶어 기운을 못 차리고 목소리를 못 내고 있으니! 이래 갖고 나라가 제대로 건국이 되겠나?”
“기근과 역병, 두 개의 재앙이 동시에 온 섬을 뒤덮었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경황이 없는 중에도 한반도 분단 프로젝트는 더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상상해보려했다. 국민을 살리는데 관심이 없는 정부, 매점매석과 부정부패로 인한 생필품 부족, 이미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데 더 나아질 기미조차 없는 상황, 반겼던 해방은 모리배들의 것인지 친일파의 것인지 모를 정세... 이 책 속에 내가 안다고 생각한, 잘 모르던 생생한 세계가 있었다.
미군정이 3.1 운동 기념식 집회 허가를 내주지 않아 긴장과 반발이 고조되는 내용을 만나자 2023년에 목격한 참담한 3.1절 기념식이 떠올랐다. 보고 싶지 않았던 무차별 발포는 소설 속인 듯 현실인 듯 발생했고, 사람들이 죽었다. 해방된 조국과 희망한 미래는 “상상이 일으킨 열정이었고, (...) 불행히도 현실이 아니었음이 판명되었다.”
그리고 서북청년단을 대동하고 육지 인사인 극우주의자가 미군정에 의해 발탁되어 도지사로 제주에 들어왔다. ‘빨갱이’란 멸칭이 태어났고 호명만으로 사람을 죽였다. “좌우 가릴 것 없이 좀 똑똑해 보이는 청년은 무조건 남로당이고 빨갱이라고 했다.”
어디쯤에서 나는 장르도 시대도 다 잃었다. 지금도 금기어이자 사생결단을 낼 적을 가려내는 말, 빨갱이, 그리고 실체를 모를 “공산주의를 없애기 위해서는 어떠한 악마와도 손을 잡을 것이다”는 논리, 불과 며칠 전 비슷한 말을 한 목사의 소식을 기사 제목으로 얼핏 보았다.
이 시절의 호명은 지금과 그 의미가 다른가. 가려내어 단죄하고 처벌하겠다는 적으로 삼겠다는 태도는 유사하다. 거기엔 공화정도 민주정도 법치도 인권도 무엇도 고려되지 않는다. “해방은 그때 한달뿐이여.” 왈칵 오르는 눈물도 울컥 오르는 아픔도 지금은 삼킨다. 아직 3권이 남아 있다.
첫 장부터 읽기가 힘들었다. 작가가 그만큼 생생하게 어쩌면 증언을 옮기듯, 악랄한 폭력과 죽음과 슬픔으로는 다 표현 못할 충격과 분노와 그리고 깊은 슬픔을 담아 놓았다. 유가족도 친지도 아닌데 울분이 끓어오른다. 반성도 사과도 없는 자들, 저만 좋은 용서를 입에 올리는 자들, 모욕하고 왜곡하고 여전한 가해를 가하는 자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언젠가 친구와 탄 택시에서 기사분은 도착할 때까지 원희룡이 얼마나 천재인지, 제주의 자랑인지를 얘기했다. 친분은 잘 모르지만, 변호하듯 설득하듯 끈질기게 육지방문객들에게 제주의 인물을 각인시키려는 이유가 무엇일지는 궁금했다. 인물의 평가와는 별개로, 그런 애씀에는 응축된 에너지가 느껴졌다. 아마 그걸 맺힌 한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반드시 훌륭한 사회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러도록 예비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가 경찰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들의 대표자, 그들의 미래, 그들의 희망이 살해당했다!”
제주는 그렇게 자랑이 될, 사랑이 될, 이웃이 될, 가족이 될 수많은 이들을 무자비하게 잃었다. ‘육지놈들, 육지경찰놈들, 서청놈들, 미국놈들, 침략자들’에게 살해당하고 살육당했다. 4.3도 518도 6.29도... 변화의 장면마다 청년들의 피가 흐른다. 소설을 읽을수록 현실 역사로서 제주4.3을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청과 경찰에 대한 분노가 미친 듯이 끓어올랐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고 청년들은 생각했다. (...) 어른들도 크게 동요했다. 이러다간 우리 자식들이 모두 맞아 죽겠다고 생각했다.”
해녀들은 일본군이 버린 총과 탄약을 바다 속에서 건지고, 누군가는 대숲에서 죽창을 깎았다. 봉화가 오르고 봉기가 시작되었다. 울고 싶다. 이들은 물론 더 많은 무고한 이들은 사냥당할 것이다. 죽임 당할 것이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나도 못 참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숨죽여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는 게 나았을까.
“제주도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삼십만이 희생되더라도 무방하다. 제주 백성 아니라도 나라가 선다.”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휘발유를 뿌려 온 섬을 붙태워버릴 수도 있다.”
“사태의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오직 진압뿐이다.”
파사현정*을 세우고자 흉악무도**를 꾸짖던 지난 주 명진스님의 큰 목소리가 다시 귀에 들렸다. 친일파, 서청, 이승만 정권, 미군정 네 이놈!
* 破邪顯正(破 깨뜨릴 파, 邪 간사할 사, 顯 나타날 현, 正 바를 정) : 사악(邪惡)한 도리를 깨뜨리고 바른 도리를 드러낸다는 뜻.
** 凶惡無道 : 성질이 거칠고 사나우며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없음.
조바심과 이탈과 보복과 분노의 살상은 이제 공동체를 망가뜨린다. 번갈아 서로를, 가족을 죽이고 불을 질렀다. 친구가 친구를, 친척이 친척을 죽였다. 제주는 이렇게 찢겨나갔다. 외부의 폭력은 더 거대해졌다. 공포와 처형이 늘고 총성이 커졌다. 불길이 마을을 뒤덮었다. ‘모조리 죽이고 태우고 빼앗는’ 삼광 작전은 아비규환의 지옥도를 벌였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 어떻게 삶을 다시 시작했을지 내 깜냥으로는 상상이 어렵다. 이게 뭔가, 왜 아직 반복되는가. 너무나 생생해서 많이 아픈 소설이다. 그보다 더 아팠을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