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기쁨
김용임 외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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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신 분들의 공동 시집이라니 귀하다. 기대했던 대로 시 한편마다 나이 드신 분들의 나이만한 삶이 담겼다. 열심히 살아오신 것을 열심히 시로 쓰셨다. 자격지심이 자주 들지만 재밌고 궁금해서 계속 읽었다.

 

초승달이 반달이 되고

반달이 보름달이 되기를

어서 혼인날이 오기를 기다렸던 때가 떠오른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현실에 설레기도 하고, 달은 좋아하지만 달을 보며 꿈 꾸고 설레고 어느 중요한 날을 기다려본 적이 없어서 부러웠다. 달의 모양은 계속 바뀌고 계속 돌아오니까, 설레던 때도 그럴 거라 믿는다.

 

참깨가 무참히 쓰러져 있었다

마치 내가 자식들 공부 좀 더 시켜 보겠다고

발이는 일마다 잘 안되어 쓰러져 울었던 것처럼

참깨들이 울고 있었다.

 

이주노동자가 없이는 수확이 불가능해져버린 한국 농촌 현실에서, 그 이주노동자의 노동환경이 너무 참담해서, 관련 책을 읽은 후 깻잎을 못 사먹고 있다. 아주 좋아하던 식재료라서 괴롭고, 바뀌지 않는 법과 사회에 괴롭고, 뭘 바랄 수 없는 현실이 괴롭다. 그래도 참기름은 먹고 있으니, 사는 게 참, 뭐라 해야 할까.

 

돈과 시간의 자유를 사라고

행복한 삶을 사라고 외치는

너의 소리에 홀려서

정신을 못 차리고

네게 끌려갔었다

 

전란 후 폐허에서 태어난 한국 자본주의는 다른 사회 인프라들이 마련되기 전에 기형적으로 성장했다. 일단 먹고 살아야 다른 것도 한다는, 도대체 얼마나 더 먹어야 하는지를 정하지 않은 채 협박을 이어갔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존조건이 되었다. 이 시의 시인의 자유로워졌다고 하시는데, 나는 아직이라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손톱들도

함께 조금씩 깎여 나갔다

 

명치끝이 아플 때가 있는데, 내 가슴 속에도 내가 키운 손톱들이 있나 보다.

 

자식 교육과 생계를 위해

한식집에서 열두 시간 이상 일을 했던

나는 무릎 연골이 다 닳아서

 

이렇게 살을 찢고 뼈를 깎는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양육자의 사랑이라면, 나는 해본 적이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런 쪽파 같은 작은올케 역시

추운 겨울날

병실에서 죽음과 싸우고 있다

 

사는 일이 외계인 공격보다 더 무섭다. 참 많은 이들이 지구의 용사들보다 대단하다. 폭염, 진땀, 농사, 시부모님, 뇌 수술...

 

누구의 보살핌도 불필요한 존재로 살겠다

그늘진 땅 한쪽을 푸르게 푸르게 덮겠다

(...)

비록 언제 사라질지 몰라도

세상 한편에다

내 세상을 만들겠다

 

이름을 몰라 잡초인 식물들은 인간보다 훨씬 강하다. 인간이 만들고 자랑스러워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시간만 충분하다면 모두 식물에 잠식될 것이다. 베란다 화분과 텃밭의 잡초들을 자꾸 뽑고 싶어지는 나는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농사 지어 자식을 다섯 키웠다, 호떡 구워 6남매를 키웠다, 어떻게 하시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어떻게 하실 수 있는지 영영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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