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빠진 소녀
악시 오 지음, 김경미 옮김 / 이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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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여름에 잘 어울린단 생각. 만화 단행본처럼 화려하고 멋진 표지가 즐겁다. 우리 집 청소년들에게 기분 좋게 권해볼 자신감(?)이 생기는 로맨스 판타지 장르이다.

 

원작은 인신매매/인신공양이라 누구에게도 소개하기 곤란한데 심청전을 재해석한 영어 원작을 한글로 옮겼다. 한인작가(이 호칭 별로지만 어쨌든...)의 작품이다. 영어 원문으로 읽어도 색다르게 재미있을 듯하다.

 

바다를 좋아하니 어릴 적부터 용궁이나 수중 세계를 궁금해 했는데 이야기 속 묘사가 늘 아름답고 환상적이라 즐거웠다. 도착한 날 밤에 살짝 구경만 하려하는데 훌훌 다 읽게 될 것 같아 조금 두려웠다.

 

기존의 설화와 다를 것이란 짐작에 즐거웠는데, 기대 이상이다. 주인공이 다르다! 새로 창조된 인물을 만나는 일이 나는 무척 유쾌했다. 심청은 어쨌든 처한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 스스로 선택할 폭이 넓을 수가 없다.

 

주인공이 품은 의문은 어릴 적 내가 가진 질문과 비슷하다. 도대체 신은 왜 응답하지 않는가. 왜 이렇게 바라는 게 많은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면 화를 내고 인간을 해치는 게 신이 할 법한 일인가. 그런 신을 계속 믿어야 하는가.

 

정화홍련전에 겁을 먹어서, 전래동화전집을 다시 읽지 않았다. 한국계 미국인 2세 작가가 적어도 나보다는 한국전래동화를 자연스럽게 더 잘 활용하는 듯하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다면, 어떤 동화들인지 찾는 재미도 좋을 듯하다.

 

기대한 바닷속 왕국, 혼령 축제, 저잣거리, 제사, 부족, 의상, 소품... 작가는 당연히 엄청난 자료 수집과 연구를 하는 직업이지만, 덕분에 한국적인 것들에 대해 배웠다. 카리스마 가득한 신들이 많은 세상이 현실보다 흥미로웠다.

 

불행이 겹치고 겹쳐 결국 희생되는 것 외엔 선택권도 없었던 심청전의 설정이 차용되고 각색되어 2023년에도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된 것이 가장 좋다. 구원자나 결혼해서 신분세탁은 더 이상 효용도 없다는 느낌이 즐겁다.

 

로맨스로만 채워지지 않는 세계관이 단단하고 행동도 의지적인 주인공을 만나, 현실에서 피가 서늘하게 식은 여러 가지 참담함으로부터 잠시 쉴 수 있었다. 주인공이라고 나대면서 온갖 피해를 유발하지 않은 캐릭터라서 편안했다.

 

더 장편이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 캐릭터들이 좀 더 풍성하고 섬세해졌을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웠다. 재밌는 이야기다. 이런 방식의 재창작이면 전래동화도 반가울 듯. 드라마나 영화화가 된다면 아주 매력적인 조연들도 만나보고 싶다.

 

이건 산처럼 크거나 달처럼 밝지는 않아요.”

 

하지만 당신의 혼이기 때문에 아름다워요. 단단하고 회복력이 강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죠. 그리고 고집도 세고요.”

 

그리고 소중해요. 당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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