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에서 주워 온 시
미후지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3월
평점 :
지난주부터 봄마다 겪는 알러지가 악화되었다. 공기 호흡을 해야 하는 생물이 호흡이 어려우니 만사가 더 무기력하다. 면역력은 조금씩 더 약해지기만 하는 것인지 증상은 복합적이 되고 약은 더 독해진다.
덕분에 쉬었겠지만 쉬었다는 느낌은 없고, 기억 상실처럼 시간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산책을 걸어 나가기 호흡이 어렵고, 차를 타고 나가니 눈이 아프다. 대략 난감이다. 그래도... 이런 세상이지만 기후재난으로 죽는 것도 싫다.
작품들은 내 취향이라곤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이 길 위에 두고 간 아름다운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는 어떤 작가를 좋아한다. 이 시집의 제목도 그래서 몹시 끌렸다. 길 위에서 시를 주어 오시다니요...
‘미후지’*라는 필명에 먼저 놀라고, 시인의 관심이 어디에 머무는 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길 위에 잃은 것은 아니라 버려진 존재들을 사진에 담고 시로 기록한 시집일 듯했다. * 껍질을 벗기지 않은 돈육 뒷다리 부위.
일상의 풍경들에는 내게 낯선 풍경도, 아주 오래 본 적 없는 풍경도 많았다. 작은 땅, 그마저도 절반이 가로막힌 공간이 문득문득 너무 갑갑하고, 어디를 가나 쇠락하는 원도심과 똑같은 디자인의 신도시가 지루했는데, 누구의 삶도 결코 단출하지 않다는 반성도 했다.
그리고... 인간들이 사는 동안에는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결국은 쓰레기가 되는 물건들이 넘쳐 나겠지만, 언젠가는 식물들이 그 모든 허물을 덮어줄 것이라 상상해보았다. 인간이 저지른 짓이 화석으로도 남지 않으면 좋겠지만.
적어도 수백 년은 육지에도 바다에도 쓰레기들이 떠다닐 것이고, 후쿠시마 오염수가 본격 방출된다면, 희석 분해될 거라는 무지하고 뻔뻔한 희망 대신, 수많은 생물의 유전자를 변형시키며 농축될 것이다.
하루 종일 미세플라스틱을 호흡하고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살면서, 봄 알러지만 사라지면 살만하겠다고 생각하는 나를 피식 가엾게 여겨 토닥토닥해본다. 좀 나아지면 다시 산책을 나가자. 시는 못 써도 자주 지구의 풍경을 봐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