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생활 1~2 세트 - 전2권 (완결)
안난초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호기롭게 산책 나갔다가 축축해져 귀가했다. 인간 외의 많은 생명들에게 반가운 비가 내리는 시기이다. 나무나 꽃을 봐도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어쩐지 사이가 좀 데면데면해진 기분이다. 공해는 인간이 발명한 것이니.

 

어두운 집 화분에 갇혀 비도 못 맞는 식물들이 혹 뿌리가 과습할까 걱정이 조금 된다. 바삭한 햇살도 빛도 볕도 모자라는 봄이다. 논픽션 만화인데 도리어 그림책 같기도 하다. 식물처럼 보드랍고 따뜻하다.


 

식물들 이야기보다 식물들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더 많다. 그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이 식물들을 향하고 있는 그림의 화면들이 참 좋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말이 적어 화면마저 고요하다.


 

좋아하는 상대를 가만가만 관찰하여 필요한 것,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알아차리는 시간은 우아한 수행과도 같다. 그런 이들은 인간 사람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로 고요히 바라볼 것 같다.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시끄러운 내 속도 비 오는 주말에 낯설 정도로 고요하다. 하아... 살 것 같다.

 

생각해보면 불순한 의도로 들인 식물들도 있다. 미세먼지 좀... 향기 좀... 초록초록한 아름다움 좀... 어떻게 해달라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그런 것들을 바라며 구매한 소비자인 나. 돌보지 못해 죽인 생명도 많았다.

 

이른 봄 나뭇가지를 마구 자르는 작업은 고통스럽고 화가 치미는 일이다. 행정책임자가 바뀌면 가로수 수종이 바뀌는 것도 유치한 하질의 행정질이다. 오늘은 대규모는 아니지만, 우중에 인도 일부 블록 갈이를 하는 현장을 보았다.

 

귀를 막을 수도 잠시 자리를 피할 수도 없는 나무 근처에 작업 도구와 쓰레기가 놓여있고 차령이 바짝 주차되어 있다. 어디서 인간들 멋대로 데려 왔는지 모르지만 너무 고생이 많다.

 

요리하는 것과 식물을 키우는 건 비슷한 일인 것 같아. (...) 요리를 하려면 계절마다 제철 재료를 사게 되잖아? (...) 그런 걸 보면서 아주 커다란 리듬에 맞추어서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거든. 땅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그런 생명력이 느껴지는 것이 좋아.”

 

땅을 딛고 움직이며 사는 인간도 땅에서 떨어지면 두려워한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평생 움직이지 않는 생명체인 나무가 땅에서 뽑히는 경험은 어떤 것일까. 잔뿌리 하나도 다 필요해서 만들었을 것인데.

 

고요히 생각하는 일은 이토록 무섭고 두렵다. 심장이 거세게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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