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 - 최신 신경과학이 밝히는 괴롭힘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
제니퍼 프레이저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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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조작에 능하고 기억력은 신뢰할만하지 않다는 점을 배우게 되어 참 다행이다. 덕분에 문제나 갈등을 마주할 때 내 기억을 먼저 살펴보긴 하지만, 무조건 방어하고 반박하지는 않을 심정적 여유가 오히려 생겼다.

 

괴롭힘은 특정 범죄나 행위 같지만, 인간 사회에 흔하게 일어나고, 의도하지 않고 무심코 저지른 가해 행위 전반을 포함하는 말이다. ‘관계속에서 발생하는 강도 여부를 불문하는 공격도 괴롭힘이고 뇌에 상처를 낸다.

 

반성과 치유를 동시에 혹은 번갈아가며 읽는 책이다. 그야말로 사는 일은 죄짓는 일이라는 종교적인 생각이 들 지경. 크고 작은 경쟁 상황들에 아주 오래 자주 참여했으니 얼마나 서로를 상처 입히고 입었을까.

 

- 상대가 불편해하는 반응에 대해 농담이라고 얼버무리거나 웃어넘기는 것

-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이야기하는 상대에게 반응하지 않는 것

- 단체 대화 시 한 사람을 무시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취급하는 것

 

똑같지는 않아도, 사정 설명을 막 하고 싶은 경우도 있지만, 비슷한 상황 비슷한 반응은 한 적이 있다. 물론 반대로 사실무근인 소문의 주인공이 된 적도 있고,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공격당하고 피해 입은 적도 있겠지만.

 

논문과 유사한 분위기의 충실한 이 책은 증거를 제시해서 생각을 바꾸고자 한다. 우리 뇌가 신체적이고 성적인 학대 만 아니라, 정신적 학대로도 심각하게 상처 입을 수 있다는 여러 연구 결과를 만나 볼 수 있다. 귀중한 자료다.

 

무엇보다 고마운 일은 저자가 뇌의 회복 가능성을 확신하고 확언한다는 점이다. 나의 회복이 안심이라면 내가 상처 입힌 이들의 회복은 죄책감의 상쇄이다. 상처 입은 내 뇌도, 살면서 알고도 모르고도 상처 입힌 다른 이들의 뇌도 꼭 부디 제발 회복되기를. 그리고 가능한 반복을 피해보기를.

 

현재 또는 과거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의 뇌에는 (당연히) 가소성이 있다. 입은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 치유되려면 우선 그 상처를 인정하고, 우리 뇌를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특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왜 암을 치료하는 데는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밤낮 가리지 않고 연구하여 가시적인 결과를 얻으면서, 뇌에 생긴 이상이나 질환에 관해서는 그만큼 투자하거나 공개하지 않는 건지 답하기 껄끄러운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이 책을 쓰고 싶었던, 실제로 써나간 저자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누구나 가해자, 누구나 피해자란 기본 전제가 있지만, 알고도 의도적으로 명백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범죄 가해자들이 있다.

 

안타깝고 화가 나게도 그럴 경우, 가해자를 이해하고 변호하고 감형하고 혹은 선처를 제공하는 사회시스템도 있다. 피해를 입고 상처가 깊은 상태로 범죄를 증명하고 피해자다우라는 외압에 시달리고 2차 가해를 당하고 부정당하는 피해자를 생각해보면 의식적으로 숨을 위어야할만큼 답답해진다.

 

이 책의 표지를 본 분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적나라하고도 단단한 무기가 되어 줄 이 책을 많은 분들과 함께 읽고 배우고 얘기하고 고민하고 퍼트리고 바꾸면 좋겠다.

 

잊지도 못하는 뇌에 가하는 폭력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경건한 수행처럼 불가피하더라도 가능한 괴롭힘을 줄여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간절하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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