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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동품 상점 (양장)
찰스 디킨스 지음, 이창호 옮김 / B612 / 202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감각하는 많은 것이 신기하고 즐거운 시절이 아득하다. 매일 걱정에 휩싸이는 반복을 적당히 줄이고 싶다. 동화 같은 소설을 쓰는 작가의 책, 남은 300페이지는 비 오는 날, 목요일, 에너지 바닥, 상당히 우울한 날 읽기에 최적합하다.
“하늘은 청명했고, 공기는 맑았고, 막 떨어진 잎에서 나는 싱그러운 향기가 모든 감각을 기쁘게 해주었다. 이웃한 개울은 햇살에 반짝이며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흘렀고, 이슬은 성령이 망자 위로 흘린 눈물처럼 푸른 언덕 위에 맺혀 있었다.”
봄비가 겨울비 같...은 건 아니고, 뒤따라올 황사와 미세먼지가 두렵다. 곤충과 새들과 오랜 시간 생애주기를 맞춰 온 꽃들은 격변하는 기후에 따라 혼란스럽고, 더불어 곤충과 새들도 세대를 잇기가 난망하다고 한다.
어쨌든... 현실로 향하는 의식을 붙잡아 넬과 할아버지의 여행 속으로 들어가 본다. 그래야 조금은 가벼워지고 탈진을 막을 수 있다. 할아버지랑 여기저기 다니던 근심 없던 시절의 나도 만나고 무엇보다 작품 자체가 엄청 재밌으니까.
“대체로 양심은 탄력적이고 유연한 물건이라 많이 늘어나도 잘 견디고 다양한 상황에 맞춰지기 마련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플라넬 조끼처럼 하나씩 사려 깊게 벗거나 심지어 적절한 때에 한꺼번에 벗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 내키는 대로 옷을 걸치고 편의에 따라 벗어 던지는 사람도 있다. 후자가 요즘 유행하는 가장 멋지고 편리한 처신법이다.”
이제는 반려자 같은 불안, 모두지 모를 불가지의 세상, 거듭된 작심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나의 내면을 이 작품으로 대리해소 해보려는 야심찬 시간을 보낸다. 퀼프와 브라스를 맘껏 욕하는 재미도.
연재소설의 마지막 회를 배에 싣고 온 시절, 그 시간 그 항구로 시간여행을 가고 싶다. 심장이 거세게 뛰는 낭만, 로망romance이다. 아니 그전에 수개월 간 런던에서 연재소설 속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면.
어쨌든 덕분에 정신없이 살다 정신이 돌아온 기분으로 잘 것이다. 비 오는 날 안전한 집 안에 머무는 것처럼, 책 덕분에 겨우 ‘나이스’한 표면을 지탱한 날. 벌써 3월 23일이고 아직 2023년은 3월 중이다.
‘제가 죽으면, 빛을 사랑하고 항상 그 위에 하늘이 있는 것을 옆에 놓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