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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평점 :
읽어 본 저자의 작품들은 한편 한결 같다. 잊기 어려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결말까지 이르는 문장들의 연결이 튼튼하다. 반전이 반전답다. 주제가 진지하다. 소름이 끼치거나 진심 놀라는 구성이지만 전개는 담담하다. 위트가 발군이다.
영화화하기 좋은 작품들이면서도 심리 묘사를 제대로 연기할 영국 배우들이 필요한 원작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작품은 기다릴 필요도 없이 시작부터 대단하다. 강렬한 비극을 얼른 소개하고 내내 심리 깊숙이 파고들겠다는 선언처럼.
물론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마치 사건 하나 뚝딱 해결하듯 단선적으로 달릴 리는 없다. 반전은 절요하게 기능한다. 어느새 자력으로 방향을 바꿀 수 없이 빠지는, 타인의 뇌 속에 깊이 들어온 무서운 기분이 든다.
그러니 미지근한 스포일링은 모두 피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진지한 질문에는 무거워질 뿐 아니라 어두워지는 나 같은 독자는 더 휘둘릴 수도 있지만, 퍼즐북은 혼자 푸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간단퀴즈 같은 것 아님 주의!)
뇌과학은 지난한 것들에 반가운 답도 제공했지만, 어떤 형태의 바람과 희망을 단칼에 자르기도 했다. 인간의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배우고 나서 한동안 무기력해졌다. 다시는 사용하지 못할 단어들이 적지 않았다.
누구나 선별하고 왜곡하고 축약하기 때문에 누구나 편향적이다. 지구상에 같은 시공간을(이것도 불가능하지만) 경험하고 같은 이해를 하는 사람도 같은 기억을 보존하는 이도 없다.
“자신을 속인 개인들은 출세해서 잘 살았고, 그들의 유전자도 번성했다. 그래서 우리가 옥신각신 다툰 것이다. 우리 주장의 약점을 선택적으로 모른 척하고 특별히 옹호하는데 우리의 고유한 지성이 동원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인간이 ‘정의define’내린 개념, 사유, 가치들은 모두 무엇이며, 추구하려는 의도는 무엇이며, 설명과 설득은 무엇일까. 논증과 물증은 거의 유일한 기반이었지만,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팩트를 거짓이라 우기는 권력에는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알고도 모르고도 확증편향은 복잡한 이유들로 강력해지고, 개개인의 이유에 더해 호명권력을 가진 이들의 이익추구를 위한 방식은 더 노골적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벌이 이외의 가치를 추구하는 분야는 멸종 직전이다.
‘사랑’이라고 느끼는 주장하는 고백하는 감정은 endure할 만한 것인가. 어떤 사랑은 중상일 뿐일까. 사랑을 확신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패리처럼 당사자가 전혀 의식이 없어도 증후군이 명명되면 어떤 방어/예방력이 있을까.
상상과 망상의 경계는 얇고, 적합한 도움을 받기에는 위협을 설명/설득하는 일이 너무 고되다. 악몽 같다. 그래서 더욱, 그렇지 않은 사랑이 기적 같다. 잠시의 대화와 소통과 합의와 연대를 경험하는 삶도 특별한 기적 같기만 하다.
“죄책감이 과거에 대한 말이라면, 같은 관계에 있는 미래에 대한 말은 무엇일까? (...) 분명 두려움은 아니었다. (...) 공포라는 단어는 너무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