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ULiPE 2 : 튤립의 여행 ㅣ 팡 그래픽노블
소피 게리브 지음, 정혜경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3년 3월
평점 :
책이 도착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주말에 본 이것저곳에 꽃들이 피었다. 내일은 춘분이다. 봄이라는 소식은 이어지는데 기분도 몸도 그렇다는 걸 잘 모른다. 봄풍경이 보이긴 하는데.
“한 해는 벌써 한참 전에 시작됐네요. (...) 뭔가가 눈에 보인다는 건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는 뜻이지.”
이 책에는 꽃이름이 가득하다. 튤립, 바이올렛, 크로커스, 미모사, 나르시스, 코스모스, 달리아, 아이리스, 로즈, 재스민, 카퓌신...제목도 봄꽃의 여행이다. 종이 지도를 보고 떠나는 여행은 오랜 추억이 상기하니 간지럽고 그립다.
전작과 시리즈에 대한 평이 좋아서 기대가 컸고 기대보다 더 독특하고 철학적이고 차분하게 진지하다. 알과 나, 우리, 세계로 확장되는 여행은 한 개체의 생이나 한 가지 이론을 넘어서는 구상이다.
‘책’이 아주 다양해졌고 다양해진다는 건 오래 전 실감했지만, 철학적 사유를 전달하는 이 책의 방식은 그중에서도 독특하고 유쾌하게 가볍다. 갈등과 반목이라고 생각하면 괴로울 부조리들마저!
명명과 소유가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와 가치가 생기면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생각하다보면 뭉클하고 아득하다. 이토록 허약한 상상력도 없고 이만큼 강력한 상상력도 없다.
다들 하는 것, 늘 하던 것을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지 못한 도움을 받고 새로운 길을 찾고 다른 목적지에 도착하는 그런 일이 얼마나 가능할까(그랬으면 좋겠다). 불만은 잠시라도 해소될 수 있고, 변화보다 사랑을 택하기도 하고.
유해한 결과를 낳는 일이라면 아무 것도 안하는 편이 백만 배는 좋을 것이다. 뭐든 덜 부지런히 덜 바쁘게 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농담 같은 지금 현실에서는 상상조차 무용해지지만.
그보다는 해야 할 일을 뭐라도 하면 살아야 할 시절이다. 대부분은 허둥거리거나 허우적대겠지만, 한 발만 그 방향으로 가까이 가는 것, 절망은 매일 오늘 말고 다른 날에 하는 것. 살아있으니 그렇게 사는 실존주의랄까.
“너는 팔도 있고 다리도 있는데… 왜 거기서 가만히 움직이지도 않고 있니. 너의 내면은 돌멩이인 게 분명해.”
비유지만 인간의 취약함을 잔뜩 보고나니 속이 후련하다. 깜냥을 아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자신의 약점도 깜냥도 모르고 하는 일이 대체로 많은 것을 심각하게 망친다는 걸 지겹도록 목격하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