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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속의 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3년 1월
평점 :
<문제 제기를 위해 심연을 뒤흔드는 충격과 공포>
<피버 드림>은 바이러스에 포위당한 채로 자발적인 자가 격리 생활에 조금은 적응하고 자주 힘들던 시기에 처음 만난 작가와 문학이었다. 감염이 되면 인간은 고열로 들끓고, 미감염된 이들도 화가 치밀던 시절이었다.
피버 드림은 팬데믹만 끝나면, 이라고 허약한 바람을 가졌던 현실 인간의 꿈보다 더 아슬아슬하고 혼탁하고 비슷하게 서글픈, 고열이 보여주는 환상과 같은 드림이었다. 열에 들뜬 사람의 말을 믿고 벌레를 어서 찾고만 싶었다.
마침 여름이었고, 나는 여름의 열기가 뇌를 파고들었는지, 작품의 고열이 시선을 타고 들어왔는지 모를 혼곤한 열에 울렁이며, 어지러운 정신으로 딸의 안부를 묻고 묻고 또 묻는 인물에 그렇게 사로잡혔다.
“카를라에게 일어난 일이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 나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거든. (...) 그 애한테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계산하는 중이야. 나는 그걸 ‘구조 거리’라고 불러.”
이름을 외우기 위해 여러 번 쓴 작가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막막함과 답답함과 열기가 가득한 숨 막히는 세계는 호불호가 대단할 듯했다. 넷플릭스에서 영화화한다는 소식이 뜻밖이라 느껴질 만큼.
그 다음 해에는 심장을 서늘하게 하는 작품 <리틀 아이즈>로 재회했다. ‘작은 눈들’라는 한국어 제목도 섬칫한데, 원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칸투키들이었다. 서늘하고 스산하고 소름 끼치는 스릴러에 강렬한 공포를 느꼈다.
일 년 전에 작가에게 전해들은 경고의 메시지를 며칠 전의 뉴스기사로 확인하는 숨 가쁘게 빠른 불안의 시대. 사회적 안전망은 더 허술해지고 개인이 구매한 안보 시스템은 치른 비용이 무색하게 뚫린다.
줄곧 함께 있지 못하는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구매한 안보 상품은 해킹이 되고 거의 모든 개인정보가 침해되고 만다. 현실의 범죄에는 재빠른 수사와 처벌과 재발방지를 위한 신뢰할 대책이 마련되어 있는 건지 관련 정보를 따라가기가 두렵다.
애초에 공익을 위한 기획이 아닌 상품으로 태어난 보안 이외에 대안은 없는 것일까. 앞으로도 없을 것인가. 근절과 개선을 바라던 말들이 허망하다. 프라이버시란 언제든 공개 가능한 정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심어진 카메라들은 개인의 삶만이 아닌 인류문명의 모든 허점과 약점을 들여다본다. 불과 일 년전 이를 고발하고 경고한 작가는, 문제 해결이 아닌 문제 제기를 위해서 심연을 뒤흔드는 충격과 공포가 필요했을 것이다. 성공했던가.
<상식이 허위가 되는 순간들>
3년 째 번역본으로 만나는 슈웨블린의 작품 중, 제목으로는 이 책이 가장 무섭다. 조류공포증이 있어서 더 그런지도. 읽은 순서는 <피버 드림> <리틀 아이즈> 다음이지만, 이 책에 담긴 작품들이 초기작들이다.
인터뷰에서 밝힌 작가의 고민이 나도 몹시 궁금하다. ‘충분히 용감했는지, 새로웠는지, 미쳐 있는지.’ 최대한 비틀고 부순 방식의 이야기가 현실의 중앙을 꼬챙이처럼 꿰어내는 작업은 신기하고 궁금하다.
초기작들에서 시선과 사유의 방식이 돋고 자라고 여물어가는 것을 조금이라도 보게 될까하는 기대가 컸다. 어렸다면 분명 울었을 공포와 나이가 들었기에 이해할 수 있는 아이러니를 동시에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스무 편이나 된다.
잔혹하고 참담한 현실을 야기한 인물과 원인이 때론 허망할 정도로 시시하고 일차원적인 욕망이라서, 인간의 수준에 절망하여 그 일원으로서 비참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슈웨블린의 환상 세계에서는 그런 직접적이고 지독한 염오는 피할 수 있지만, 본질까지 도달하면 어느덧 뇌가 뜨겁고 아프다. 각자의 트리거는 다르겠지만 내게 클릭하는 한 문장에 이르면 비명이나 울음이 격발될지도.
짐작한 대로의 공포와 이젠 반려감정처럼 느껴지는 내 불안이, 만난 적 없는 작가에게 전송된 내 정보가 노출된 것처럼 읽히면 정말 무섭다. 이렇게 조마조마하게 살다가 어느 날 나도 산 채로 새를 입에 넣고 씹을 지도 몰라, 하는. 새가 아니라면 ‘고기’를 입에 넣는 현실은 충분히 문명적인가요, 싶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근본적인 사회적 합의는 아직 망가지지 않았는지 나는 문득 의심한다. 아내를 죽여 가방에 넣어두는 일, 범죄를 온갖 변명으로 구제하는 일, 무작위로 누군가를 대로에서 죽이는 일, 그 순간을 송출 보도하는 일, 잔인함에 열광하고 재생산하고 더욱 부추기는 일은 현실에 이미 비일비재하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른 종류의 맹신을 갖게 되거나 선명한 한편의 진실이 다른 편에겐 보이지 않는다. 감각도 의지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개인을 압사시키는 거대담론은 버리더라도, 함께 살기 위한 새로운 공동 가치는 필요하지 않을까.
봄이라는데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춥다. 이야기 속 모든 약한 존재들은 현실에서 더 춥고 어두울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는 단 한 번 죽고 현실에서 여러 번 죽임 당할 것이다.
! 이렇게 무서운데 이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인이 등장해서 기시감도 공포도 한 톤 더 깊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 어떤 문장들은 비문을 만난 것처럼 인지처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 문해력은 늘 컨디션에 휘둘리니 그렇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