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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친구 - 선택의 길
이정재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2월
평점 :
삶의 다른 마디마다 가장 친했던 친구들은 다르지만, 이 책 제목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친했던 나의 두 친구를 떠오르게 했다. 취향도 관심도 성격도 비슷한 것 없는 셋이 뭐가 좋아서 친구가 되었고, 지금 생각하면 특이하게도 반이 달라도 매일 만나는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에 추억에 빠져있다 펼쳐본 책에는 다른 두 친구가 있었다. 내 안의 두 친구 혹은 나라는 두 친구. 양면성이란 표현이 자주 쓰이지만 모든 사람은 다면적이다. 단지 그 모든 면이 동일 비율로 나타난다면 대표성이 없어 삶이 꽤 힘들어질 수 있다.
아주 폭이 넓은 분류 방식으로 보아 내가 생각하는 긍정성과 부정성 정도로 나눠볼 수도 있지만, 둘 다 친구라는 점에서 대비시키거나 가치판단을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좋다.
나는 딱히 양면성이 뚜렷하게 강한 편은 아니다(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대개 그렇듯 게으름이다. 뭔가를 철저히 감추고 애써 연기하면 살기에는 여러모로 에너지가 부족하다.
모자이크처럼 나를 이미지화하고, 원하는 그림을 넣고 좋아하지 않는 그림을 빼면서 산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어딘가에는 그 모든 조각들을 나누는 흐릿한 경계선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멍청한 선택을 한 결과를 감당해야하는 일들도 있었지만, 나이든 사람들이 흔히 하듯, 나도 나이가 들어 반추해보면 그런 일종의 실패와 실수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일이 없었다면 이런 생각은 못했을거야, 라거나 그런 경험을 못했다면 결코 알 수 없는 세계를 배웠다, 라고 안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두 친구 모두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다른 길잡이 같기도 하다.
인간관계로 확장하면 좀 더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처음 보는 사람이고, 내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끝까지 좋아지지 않던 피하고픈 사람들도 있었고, 지금도 애쓰거나 노력을 해서 첫인상을 극복해보려 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미워하거나 가해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가만히 이유 없이 상대가 알면 부당하게 혼자 관계의 어느 부분을 미리 포기한다고 할까. 그런 비겁한 결정의 이면에는 긍정적인 부작용도 있다. 기대가 아주 낮거나 거의 없으니 실망도 하지 않는다.
운이 좋아 그렇게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조금씩 쌓인 실망 없음이란 호감도가 상승해서 편해지기도 한다. 아주 사적인 특수 경우이지만 쓰다 보니 인간관계란 참 복잡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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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주제라 내가 뭐라 첨언하기도 힘들지만, 내 존재만큼 상대의 존재를 기쁘게 여기고, 역지사지를 열심히 하고, 이도저도 안 되어도 끝까지 존중해보자. 그러면 적어도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게 되지는 않지 않을까. 어떤 ‘선택’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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