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 - 극단의 시대, 견고한 믿음에 균열을 내는 설득의 과학
데이비드 맥레이니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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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를 좋아하지도 편해하지도 않지만, 오래 전 학문에 대한 권위는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했다. 그것마저 인정하지 않는다면 지식 기반을 어떻게 만들고 쌓아야 하는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정된 이 권위는 한시적이어야 한다. 잠정적 사실이라는 효력이 유지될 때까지.

 

아무리 학자와 연구원의 태도가 이러해야 한다고 논리적 이해를 숙지하더라도 저항감은 여전하다. 그래서 더욱 최대한 자신의 태도가 새로운 발견과 주장과 가설에 충분히 개방적인지를 반성하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



 

문제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과 추론으로 개방성을 가진 학문 결과가 아닌, 다른 스토리텔링이 막강한 현실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확신에 이르는 과정에서 반복해서 검증 가능한 구조가 아니라면 억지와 맹신에 이르는 것은 필연적이다.

 

신념이 된 이야기를 타인의 설득할 방법은 없다. 논리와 사실 검증보다 더 확실한 이익을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확증편향과 맹신 구조를 고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팩트/증거자료의 부족으로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알지만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호도하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에 가능한 여지는 후자에 이르면 사라지고 만다. 나와 내 삶과 연관이 먼 타인의 경우라면 구경하듯 할 수 있으나,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이라면 소통의 어려움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심대하다. 확고한 신뢰관계가 아니라면 어떤 선의의 소통도 무력화되기 쉽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려는 이들 역시 내가 틀릴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과 저항감이 있으며, 새로운 정보 수용에 시간이 걸린다. 희망과 절망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울 진 모르나 동화의 상한선은 정서적티핑 포인트라고 불린다. 논리는 생각보다 자주 무력하다.



 

저자는 믿음과 상충하는 증거가 충분히쌓이면, 더는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포인트에 도달하고, 이때 뇌는 더 이상 보존이 아닌 능동적인 학습 모드로 전환된다고 한다. 내 질문은 두 가지다. ‘충분히와 정보 자체의 정합성... 어떻게 공급되고 보장될 수 있을까.

 

상대가 지칠 때까지 주저 없이 거짓정보를 공급하는 이들이 분명하고, 그에 격렬한 반응을 하다보면 항복을 선언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드물게 있다. 고민이 많은 주제라서 반갑고도 무겁게 읽었다. 와중에 나의 편협함과 너무 단단한 믿음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타인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때 당신의 의도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양쪽 모두 내가 옳고 당신이 틀렸다는 태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아무도 전지전능하지 않은 현실에서, 서로가 모르고 편협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럼없이 인정하면 가장 좋겠지만, 쓰면서도 민망한 이상이다. 특별히 그 싸움에서 노리는 이익이 없는 나는 개인으로서 수많은 다른 이들과 대화와 소통을 이어가는 방법만이 절실하다.

 

플랫폼이 정보공개와 소통의 중요한 실험장이 될 거란 서툰 생각은 반만 맞았다. 알고리즘은 민주주의도 다양성도 논의가능성도 포용가능성도 다 망치는 듯하다. 더 많은 만족감과 자극과 확증편향을 굳히는 길로 안내하는 교활한 표지판 같다.

 

심리학과 뇌과학의 이론과 연구 결과와 중요한 개념어들이 충실한 책이다. 현명한 지적과 놀라운 실험 예시들도 있다. 그 모든 희망의 증거를 빼먹고, 편협하고 제 상황에 천착한 내 감상을 주로 적은 글이라 누군가의 독서에 편향을 미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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