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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번지거든
연서율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월
평점 :
국제관계학과 경제학과를 졸업한 분이니 사회파 미스터리를 쓰셔도 어울렸겠다는 어쩌면 뻔한 내 짐작과 달리, 이런 표지의 시집을 출간하셨다. 수채화의 물이 번지듯 꽃잎이 번지는 풍경이 뭘까 상상해본다.
이제 곧 2월이 끝나면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봄, 겨울을 난 튤립이 싹을 올리고 있고, 지난주에 하려다 만 딸기모종 옮겨심기도 해야 한다(딸기농사 아님 주의...). 그러나 금요일만 되어도 주말 동안 아무 것도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는 생각 뿐. 최대한 힘을 내어 영화 보러 가기 정도...
산책은 가야하는데, 진짜(?) 봄꽃들을 만나는 기쁜 순간이 있을 지도.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발발된 지 일 년이 되는 날이다. 꽃얘기, 영화얘기, 주말 뒹굴뒹굴 얘기하다보니 우울해진다. 누가 누구와 싸우는지는 복잡해도, 죽고 다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은 늘 약자들이다. 그곳에도 꽃이 피고 꽃 같은 이야기도 새로 만들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겨울에 태어났고 겨울을 사랑하지만, 아버지가 심어준 내 나무는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목련이다. 왜 이 나무를 고르셨을까 의아했지만 겨울에 태어난 아이가 백일 지나 봄꽃을 건강하게 맞기를 원하셨을 지도.
나무는 계속 자라고 나는 매일 분해되고. 역시 다음 생엔 나무로 태어나야겠다. 가능하면 꽃이 피고 진 뒤 열매도 맺는 나무로. 어딘가 깊은 숲에서 태어나길. 이웃은 많아도 한적하게 살 수 있기를.
혹 게으름 병이 심해져서 주말 내내 나가게 되지 않을까 저녁에 산책 겸 영화 보러 나섰다. 산책 동무로는 자그마한 시집이 최고다. 잠시 숨을 고르면서도 시 한편은 읽을 수 있으니까. 시선을 높이 들어 멀리 보면, 제주에 핀 유채꽃이 떠오른다. 어딘가는 벌써 꽃이 피어 번졌다.
꽃은 꽃이지만 인간이 인식하는 꽃이 아니고 꽃의 색 또한 그렇다고 과학은 가르쳐준다. 인간이 받아들이는 빛의 스펙트럼 내에서 세상은 가시(可視)할 뿐이니, 내가 보는 모든 것이 내 뇌의 연출일 뿐. 그러면 어떤가, 싶을 만큼 여유를 부릴 만큼 나이를 먹었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