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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옴
윤미경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월
평점 :
모스크바 대학에서 유학한 발레리나이자 작가이자 마케터, 컨설턴트.... 시인의 이력을 보며, 여러 종류의 삶을 사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을 거란 상상을 더 구체적으로 해본다. 무난한 내 생의 지나온 세월의 마디마디가 문득 모두 다른 생 같기도 한데, 저자는 더 그럴 듯도.
‘솜’의 옛말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 배웠다. ‘소옴’ 점점 더 사람들이 바빠지니 음절이 줄어든 걸까. 지금은 문장 자체를 줄여 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간단하고 빠르게 이해 가능한 소통 행위가 일반적이라는 생각도. 삼천포 입구에서 다시 책으로 돌아간다...
5장이 없는 특이한 책으로 오래 잊지 못할 듯하고, 시집인 줄 알았는데 에세이도 있다. 다른 직업군의 이야기는 늘 궁금하니 살벌한 업무 처리를 흥미롭게(?) 읽었다. 지나고 나면 어떻게 한 건지 싶은 게 많은 업무의 추억... 이랄까. 문득 지난 자료 다 꺼내 태우고 싶은...
‘모든 이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가 별똥별에 빈 소원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도저히 연결 짓기 어려운 경력자인가 싶기도. 그 중 편의점 알바, 카페, 공방이 제일 궁금하고 부럽다. 어릴 적 나도 소원을 빌긴 했는데 기억에 없다. 이루어진 걸까, 좌절 망각한 걸까.
요즘 영어 단어도 잘 생각이 안 나는데, 불가사리란 제목의 시가 있어서 아이에게 물어보니 starfish라고, 나는 seastar로 알고 있었는데, 이상하네. 동화에선 서럽게 울면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가 짠~ 나타나지 부럽다. 불가사리, 눈물, 달빛, 바다, 꿈, 물방울... 다 아름답네.
꽃망울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민들레는 아직... 이다. 다른 꽃과 꽃나무는 제 자리를 인정받고(?) 피는데, 민들레는 길 가다 우연히, 척박한 어느 틈, 상상도 못한 어딘가에도 노오랗게 피어날 때가 있어서, 눈에 확 들어오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올 해 봄에도 꿀벌이 와줄까. 개미도 보고 싶다. 어릴 적엔 밟지 않으려고 열심히 보고 다녔다. 어른으로 사는 일 중에는 운전하던 차에 누군가 치여도, 인간이면 범죄였을 그 일을, 앞뒤옆으로 가득한 차들 틈에서 내릴 수 없어서 지나치며 마음 어딘가가 무너지는 일도 있다.
살면서 같은 존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면서도 다르다는 이유로 온갖 못된 짓을 하는 이상한 인간. 좋은 친구가 못 되어 친구의 우울을 들어주다 제가 더 우울해졌다. 이래서야 다음 생에 튼튼하고 멋진 나무로 다시 태어나긴 어려울 듯.
공기도, 흙도, 물도 지구의 이끝에서 저끝까지 모두 오염되었다. 그러니 깨끗하고 안전하게 사는 건 불가능하다. 어떤 식재료라도 농도 차이를 제외하면 마찬가지일 터. 그럼에도 고농축된 식재료는 무섭다. 친구가 봄바다에서 난 식재료를 선물로 보내주었다.
본능처럼 사랑했던 안전하고 아름다운 연안 바다, 그 속에 잠기거나 둥둥 떠 있어본 지가 오래다. 이런 삶을 살게 될 줄이야. <아바타2 물의 길>은 3시간짜리 가상현실 체험 같았다. 심해 다큐멘터리 영상들을 보는 게 매일의 위안이다.
빠르게 가라앉는 기분을 이 책을 펼쳐 두고 호흡한 기분이다. 같은 단어라도 시어라고 생각하면 좀 더 자유로워진 연상이 활발해진다. 부작용은 오독이다. 그나저나 솜이불이 불면 완화와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솜, 소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