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키우는 사람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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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되기 전에 어른이 되고 싶지만 바라는 대로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체념을 새해마다 하게 된다. 사유에 골몰하는 시간보다 색채라는 시각 감각에 더 솔직하게 기뻐하는 나를 보며 애틋하기도 하고 그저 즐겁기도 하다.

 

작년에 꿀벌의 대량 실종에 놀람 이상의 충격을 받았다. 불안은 급등하고 두려웠다. 그들이 가면 인간도 간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꿀벌이 없는 세계에서 인류의 생존은 가능할까. 여러 자료를 찾다가 도시양봉을 하는 분들을 만났다. 꿀벌에 대한 공부는 그렇게도 시작되었다.


 출처 @<벌 볼 일 있는 사람들> 호박벌


출처 : @urban.bees.seoul 

112일 월동준비를 위해 밀랍꽃을 피우는 꿀벌들

 

이 책은 발작적으로 반가운 제목과 찬란한 빛깔로 나는 사로잡았다. 차분하고 깊은 색감의 황금빛을 사랑하니 그보다도 더 오묘한 표지를 만나는 기쁨이 컸다. 책의 실물성을 느끼며 내용을 통해 알게 될 새로운 지혜와 가치를 상상해보았다.


 

감각하고 인지할 수 있는 모든 색채에 감사한다. 흰 눈과 검은 바이올린이 화가와 철학자의 차분한 서사였다면, 꿀벌과 황금빛은 환영처럼 찬란하게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회화나 영상이 아닌 문학이 페이지마다 농염할 정도로 강렬한 색채를 펼친다.

 

경험하지 못했으나, 존재에 깊이 새겨진 그리움처럼 오렐리앙의 선택과 여정에 공감했다. 로맨스romance에 다름 아닌, 서사시와 같은 이야기는 금을 찾아 아프리카를 향한 떠돎이면서, 화염처럼 타오르는 광기의 애정이면서, 인간만이 노래하는 가치를 내포한 poem’였다.

 

우리는 태어난 후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물리적으로 방랑하고 애착을 형성하고 각자의 을 찾기 위해 애쓰고 애타한다. 우리 각자가 발하는 색은 체온으로 타오르는 불빛이며, 구술하고 기록한 모든 신화는 생존했던 이들의 태피스트리tapestry.

 

강렬하고 아름답다. 늙어서 새로운 도전은 지레 포기하는 지금의 내게도, 읽는 내내 문장들에 홀려 황홀했고, 읽고 나니 명치 어디쯤에서 따뜻하고 간질거리는 것들이 느껴졌다. 선택과 결심과 고백과 행동으로 쉽게 치환되던 젊음, 그림자마저 반짝이던 시절.

 


오렐리앙은 (...) 방황만이 어느 날 자신을 발견하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51

 

인생의 금을 찾기 위해 꿀벌을 키우고, 생명 같던 꿀을 만난 오렐리앙은 붉은 불꽃에 모든 것을 잃고, 검은 땅으로 빛을 찾아 떠났다. 파랑새를 만나는 어린이들의 모험보다 금을 찾는 어른들의 모험에는 눈을 가리는 광기와 집착을 태울 더욱 농밀한 경험이 필요했다.


 

그 절대를 찾는 여행자들. 그 금을 찾는 사람들은 실은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있는 거지요. (...) 그들은 전보다 더 빈손으로 돌아옵니다. 헛된 생각마저 사라졌으니까요.” 152

 

현대과학은 우주 어디에도 의미나 계획이 없다고 한다. 어둠과 죽음이 디폴트이고 빛과 생명은 설명할 수 없는 섭동에 의한 찰나적 예외라고 한다. 그래도 무기력하고 슬프지 않다. 오렐리앙의 모든 여행이 헛되지 않았듯이 인간의 삶은 노을빛을 남긴다.


 

나이를 더 먹고 헛된 생각이 더 많이 사라진 내 작은 상자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찾고 있던 운명이 어떤 빛을 뿜고 있을까. 금벌 두 마리가 잠시 우주에서 가장 부러웠고, 내가 사랑하는 다른 존재들이 곧 마음을 가득 채웠다.

 

삶과 인간을 노래하는 황금빛 시를 환상소설처럼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즐거웠기 때문에 기운이 난다. 현실의 꿀벌 대량 실종에 대해서도 우리는 근본적 대책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믿고 싶다.


 

포기나 좌절은 한 줄기의 금빛마저 모두 사라졌을 때, 마지막의 마지막에 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다.

 

............................................

 

(...)

 

하늘도 별도 잃지 않는

너는 지난겨울 꽁꽁 언

별 속에 피는 장미를 키우지만

나는 이 땅에

한 그루 꽃나무도 키워보지 못한다

 

(...)

 

저녁이 오면

너는 들녘에서 돌아와

모든 슬픔을 꿀로 만든다

 

정호승 시 꿀벌 중 일부 <내가 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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