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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캣 식당
범유진 지음 / &(앤드) / 2023년 1월
평점 :
제목에서 중요한 설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뜻밖에 ‘식당’과 함께이니 궁금하지 그지없다. 무엇을 모방하는 걸까, 어떻게? ‘모방’ 욕구는 반드시 현재 자신에 대한 실망이나 부정에서 기인할 것이고 부러워하고 탐내는 다른 방식, 형태, 존재가 있어야 한다.
이 식당 주인이나 주방장이 다른 셰프의 요리를 모방하고 흉내 내는 것인가 했던 짐작은 완벽하게 틀렸다. 여러 번 썼지만 짐작이 틀릴수록 더 기대되고 재밌는 것이 소설이다. 더구나 표지가 전하는 범상치 않은 느낌이 긴장을 더한다. 레몬을 으깨는 저 손!
뭘 먹어도 맛이 없고 먹고 싶지도 않은 날들이 오래다. 유일하게 뇌에서 맛의 향연을 느끼는 비건 파스타가 있지만 그것만 먹으며 살 수는 없다. 새해 기운도 못 받아 채운 채로 1월이 다가는 시간, 욕망과 삶을 얘기하는 식당 속으로 들어가 본다. 내게 필요한 레시피도 있을까.
“탐욕과 동경이 뒤섞인 오로라빛 식당 (...) 영혼의 레시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먼저 읽은 친구는 미스터리, 공포, 스릴러 요소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인물들이 대개 안타깝고 가여웠다. 내 것이 아닌 모습을 삶을 훔쳐서 내 것으로 기워보고 싶은 절박한 이들... 내 욕망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욕망과 실수에 휘말려드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망했다는 말, 사람들이 많이 쓰잖아, 그 사람들은 진짜 망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럴 수 있는 거야. 진짜 망해 보면 그 말 함부로 못 써. (...) 망한 시점에서 이전과 이후로 삶이 나뉘어 버린다고.”
피곤하거나 아프면 혹은 지친 기분일 때 나는 레몬 생각이 난다. 레몬 노란색이 좋고 그 향이 아주 좋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고 평생 좋아할 것이다. 그래서 가장 끌린 스토리 [회복의 레몬 꿀차]의 문장들을 화두처럼 품고 생각했다.
“수차 발전기가 있다고 상상해 봐. (...) 발전기를 돌리기 위해 필요한 수력, 그게 욕망이야. (...) 하지만 손님에겐 발전기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물 그 자체지. 궁금하군, 그렇게나 강렬한 욕망이 뭔지.”
여러 욕망 중에서 식욕이라는 욕망이 말라붙은 이유(들)를 알게 되면 내가 가진 ‘발전기’를 돌려볼 수 있을까. 필요한 수력, 그 욕망이 무엇일까. 나도 누군가의 인생을 훔치고 싶은 건지, 즉 내 인생에 실망한 나머지 침잠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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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더 잘 어울리는 표지의 색감처럼 상당히 차가운 결말을 서늘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인상적이다. 조금 쓸쓸하지만 덕분에 차분하다. 적당히 살만 하면 살 수 있는 우리, 대단히 이타적이진 못해도 늘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을 정도의 온기를 나누는 우리에게 담담히 전하는 한 권의 위로. 현실에 무척 가까운 판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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