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베니스의 개성상인 1~2 세트 - 전2권
오세영 지음 / 문예춘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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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이다. 심장이 간질간질하다. 30년 전에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려준 친구가 그립고, 베니스도 개성상인도 소설에도 별 관심이 없었던 20대의 나도 그립다. 갱년기인지 감성놀이인지 그저 늙어서인지 추억에서 가장 그리운 것은 늘 그 시절이다.

 

몇 년 후 유럽을 가고 베니스(내겐 언제나 베네치아Venezia)에 여러 번 가게 되고 좋아하게 되고 머물고 싶어서 병도 나고 떠나기가 지독하게 싫은 애착이 생겼다. 관광이나 여행을 간 적은 없지만, 워크숍 전후로 가능한 방학과 휴가를 붙여 하루라도 더 머물고 싶었다.


 

운이 좋아 베니스에 집이 있는 친구가 있었고, 덕분에 관광지와 호텔에 머문 적이 없다. 동네 골목에서 어슬렁거렸고, 늘 같은 카페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안토니오 코레아를 떠올렸다.

 

강고한 분단국가라 베니스보다 개성이 더 먼 곳이다. 살다보니 역사소설, 역사서를 무척 좋아하는 취향을 발견했다. 역사소설이고, 자꾸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서 더 좋았다. 작품 자체도 엄청 재미있다. 분량이 꽤 되는데 벌써 인가 싶게 다 읽었다. 완독이 꽤나 아쉬웠다.





알고 보니 일본 애니메이션이었지만 펑펑 울던 <플란다스의 개>의 잊을 수 없는 루벤스의 작품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팩션이란 재미도 상상력도 더 자극한다. 오랜 시간 읽힌 작품의 개정판이라 헷갈림 없는 구성 또한 무척 마음에 든다. 세계사 지도를 따라 줄거리가 이미지처럼 확연해진다.

 

전쟁이란 여러 의미로 변곡점이자 진짜 뉴노멀의 계기라는 실감도 든다. 임진왜란 전후로 변화된 몇 가지 내용에 유승업의 이야기가 더해지자, 임진왜란 전쟁사를 모두 찾아 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상세 줄거리 생략)

 

유승업의 입장에 나를 두고 상상해보았다. 당시 살 곳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조선과 유럽 어디를 택했을 것인가. 소설의 장면들이 아주 치밀해서, 아는 풍경의 익숙함에 시대적 재구성을 더한다. 픽션과 팩트의 구분이 가를 필요성을 못 느끼게 잘 밀착되어 있다.

 

유럽의 사회문화적 상황, 기술 개발 정도, 어느 날 홀려서 산 베네치아의 유리공예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세상에... 소설을 읽으며 배운다. 마감 후 보석 연마하듯 깎아낸 건가 싶었던 그 매끈함이 양면연마술이었구나.


 

30년 전에 읽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 경험을 놓쳐서 무척 아쉽다. 역시 책은 눈에 띄는 대로 닥치는 대로 많이 읽어두는 편이 좋다. 모험기처럼도 읽히고, 역사지식서처럼도 느껴지는 독특한 소설이다.

 

그래서 1617년 루벤스는 한복 입은 남자를 그린 걸까? 시칠리아 어느 시골 마을에는 한국인들이 살았을까? 전란의 와중에 포로가 되고 외국어들을 익히고 회계학도 공부하고 직장을 구하고 재능을 찾고 귀화하고 베니스의 시민이 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대단한 모험가.

 

16세기 유럽사 중에서(이 책은 팩트 소재 소설이긴 하지만) 한국인이 등장하는 한국소설이라 특이하고 재미있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더 자유롭게 역사를 재구성한 느낌이다. 다 믿을 이유가 없다 해도 즐길 이유는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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