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 - 소외된 노동계급의 목소리에서 정치를 상상하기
제니퍼 M. 실바 지음, 성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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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은 누군가의 노동 없이 만들 수 없습니다. 중요한 일은 중요하게 대접을 해야 하는데, 현실에선 왜 그렇게 복잡한 변명과 핑계와 가스라이팅이 많을까요. 하루 3시간 자는 귀족이 동서고금 어디 있습니까. 귀족은 '직업 자체가 없는 계급'입니다.

 

화물연대파업이 그렇게 끝나버려서, 펑펑 울면서 일터로 돌아간다는 인터뷰가 서러워서 없던 식욕이 며칠 더 줄었습니다. 이겼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더욱 기고만장해질까요. 차별은 심화된다는 말이 무색하게 극단적이고, 노동자들은 매일 죽습니다.

 

한 지역의 일이 아니라서 더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 정치 행위의 결과만 두고 행위자를 비난하는 방식이 아닌, 저자의 현장을 경험하는 사회학적 사유와 여정을 따라 읽으며 배워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하려 애쓰는 전문가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주권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효용성을 느낄 수 없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 믿지 못하는, 신뢰할 수 없는 정책은 필패합니다. 예전엔 정책 대신 선의를 믿기도 했고, 기다려도 봤지만, 수혜자 논리의 허점과 거짓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나이, 인종, 젠더를 막론하고 정부를, 교육과 의료 서비스 같은 사회 제도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너무나도 불신해서 기존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농담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소위 찔끔 베푸는 시혜 따위에는 모욕감을 느끼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가난하면 감정도 없는 줄 아는 정치인들이 가난하면 불량식품이라도 먹을 게 있어야 한다고 하겠지요. 저자가 찾아간 미국 탄광촌의 상황은 한국과 다른 점보다 비슷한 풍경이 더 많다고 느꼈습니다.



 

인터뷰하는 태도와 방식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배웁니다. 판단보다 질문이 먼저, 일반화보다 구체적이고 각자인 고통을 묻는 일, 성실하게 듣는 일, 자료를 통해 사람의 내면에도 주목하는 능력, 단순화하지 않고 복잡한 그대로 이해하고 정책화하자는 제안...

 

저자가 만난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미국 정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웨스트윙> 드라마가 생각났습니다.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많은 이들이 정치에 기대하는 건 조금 만 덜힘들 방법... 최선을 다해도 개인이 어쩔 수 없는 일들에 정책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그런 바람...

 

볼 때마다 조금 울었습니다. 다들 명예도 존엄도 자부심도 망가진 상태로 견디는 사람들, 여전히 힘겹게 버티고 견디며 살고 있는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 정치란 뭐 하자는 것인지 정치인들 모두에게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비관적인 내 눈에는 삶을 버티게 해주는 것들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사회 안전망은 허술해지거나 끊어지고, 경제적 불평등은 고조되고, 일상의 차별과 혐오와 폭력도 드세 지고, 사람들은 누구도 믿지 못하고 홀로 설 방법을 계산하기 바쁩니다.

 

민주적 과정이 부자들에게 유리하게 조직되어 있다고 확신하는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은 인터넷상의 음모론이나 자기 계발 산업에서 의미를 찾는다. 두 가지 모두 이들이 서로에게 날을 세우거나 내부로 방향을 둘리게 하는 외로운 전략이다.”

 

정치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이웃, 공동체, 사회, 지역, 국가를 믿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계발은 구원책일까요. 실패할 때마다 음모론을 제기하고 적이라고 생각하는 생각이 다른 이들을 거칠 것 없이 혐오하면 살만해 지는 걸까요.

 

어지럽고 어려운 풍경 속에서, 저자가 굳건하게 탐색하는 정치적 가능성에 왈칵 눈물이 납니다. 누구의 고통에도 무감하지 말자고, 우리는 우리라고, 연대는 아무리 어두워도 가능하다고, 변화는 당사자로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계급 사다리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가하는 무심한 잔인함에는 무지한 채로 사회정의만 부르짖는 엘리트 자유주의자들의 위선에 예민하다. 아무리 일반적으로 이들과 투표 성향이 같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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