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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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고 기다린 책들 중 하나, 드디어 오늘이다. 같은 주말이라도 성탄 연휴는 바쁘고 들떠서 늙고 지친 나는 내내 졸리고 피곤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만나는 이들에게 성탄 인사를 건넸다. 모르는 분들과도 조금은 더 즐겁게 말을 나누는 행복한 핑계가 되어준다.

 

은하가 교회도 다니세요? 하고 다시 묻자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때만 간다고 대답했다. 그날이 주님 그 냥반 생일이라 기분이 좋은 그 냥반이 기도를 잘 들어줘서 간다고.”

 

첫 교육기관은 성당유치원이었다. 선생님은 모두 검은 옷의 신부님 수녀님인줄 알았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고 모든 게 어리둥절했다. 수녀님이 보고 싶어서 조금 울기도 했고, 성탄절마다 성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들이 친하셔서 우리도 친했던 착하고 멋진 초등학교 동창은 신부님이 되었다. 천직이라서일까, 여전히 똑같이 예쁘게 웃으며 지내는 모습이 좋았다. 여러 나라에서 몇 년 씩 머무는 일이 잦으니 잠시 만나기도 쉽지가 않아서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더 생각난다.

 

우리에게 겨울이, 크리스마스가 있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무엇이, 어떤 사람이, 어떤 시간이 진짜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 오해하실까 TMI 밝히자면 저는 종교를 갖지 못했습니다. 아쉽고 서운한 일입니다. 대신 좋아하고 존경하는 종교인들이 많습니다.

 

사람과 사는 일과 우주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이것저것 따지며 나도 남도 괴롭히고 싶지 않아서, 바라는 일이 있으면 간절히 바라고, 누군가의 소원도 이뤄지길 함께 기도한다. 세상사람 다 알게 기적이 있어도 좋지만 매순간 모든 존재가 기적이라 괜찮다.

 

긴긴 밤을 지나 걸어오면 12월이라는 기착지에 멈춰 서게 되고, 그것을 축복하듯 내리는 하늘 높은 곳의 흰 눈을 만나면 비로소 아득해지기도 한다고.”


 

따뜻하고 조심스러운 이 책에는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야기가 가득 있다. 각각의 단편으로 읽다보면 그렇지도 않고, 모르는 이들 같지만 다들 얽히고 엮여 있다. 소설인데 에세이처럼도 느낀다.

 

눈이 시큰거리는 지친 독자인 나처럼, 각자의 사연을 가진 책 속 인물들도 조금씩 많이씩 지쳐있다. 현실의 우리처럼 어딘가가 아프고, 무언가를 잃었고, 그렇지만 계속 살아가고 있다. 모르는 직업들이 많아서 다채로운 색감의 세계들로 만든 타일 조각들을 상상했다.



 

방송작가, PD, 미용사, 디자이너, 프로그램 설계자, 촬영기사, 카페주인, 아이돌, 대학원생, 취준생, 정신병원 보호사 등등... 무슨 색이 가장 잘 어울릴까... 흔하고 평범한 모든 삶에도 마무리가 중요하다.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 삶은 이별 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다음 만남을 시작한다. 그래서 안심이다. 그렇게 살아간다.

 

용기를 내어 다시 바란다.

모두의 시간이 조금 더 따뜻해지기를,

사람 간의 빈 공간이 조금 더 따뜻해지기를,

잠시 기댈 사람을 찾기도 하고,

잠시 답이 되어주는 말과 글도 만나고,

그런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모두 누리시길.

마법 같은 시간을 보내시길.

.

.

어둡고 추워지고 막막하고 서늘하고

그래도 아무 것도 면제되지 않는 12월을 사는

모두를 위로하려고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고 믿습니다.

책이 도착하여 손에 쥐어본 날,

사는 일이 잠시 덜 두려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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