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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이야기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2년 11월
평점 :
내게 호텔은 둘 중 하나였다. 최대로 확장된 가족 친지가 축하와 기념을 위해 모이는 곳이거나, 혼자 갇혀 쉴 수 있는 곳. 언제였는지 벌써 헷갈리는 명절 연휴에 혼자 호캉스하며 “아무도 없어! 여기도 저기도!”하며 기뻤던 시간을 떠올렸다. 산뷰 코너룸이었다.
여러 해 동안 12월은 출장과 여행을 겸해 한 달 내내 한국을 떠나 있던 시기였고(따져보니 오래 전이네...), 어쨌든 12월이 되면 은밀하게 더 성질을 부리며(표현 안 함 주의...) 산다. 생일과 축제와 연말과 마무리와 새 해... 별 일도 아니지만 쉬운 것도 쉬워지는 것도 없다.
클릭 클릭... 원하는 호텔의 예약페이지에서 결재하지 않을 예약 과정을 진행시켜본다. 단 맛의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어쩌다 온전히 혼자인 시간이 확보되면 엄청 진하고 달콤한 향이 느껴진다. 설레어 뭘 할까 부산떨다 시간이 날아가고 마는 일도 있다.
아주 잠시 관계 속의 나와의 연결이 툭, 끊어지고, 관계에 따른 갖가지 것들이 사라져서 폴폴 날아오를 듯한 가벼움, 상쾌함, 자신의 몸무게 이상을 이고지고 살아온 경기가 끝난 홀가분함... 한 달에 하루 정도는 뭐든 안하고 존재하고만 싶다. 인간이고 싶다.human ‘being’.
혼자이고자 하나 혼자가 아닌 등장인물들이 호텔에서 마주하는 시공간이 무척 흥미롭다. 방문 투숙객으로는 전혀 알 수 없을 면면이 즐겁다. 머물고 이용하는 곳이 아닌 직장(혹은 그 이상)으로서의 호텔은 아주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각각의 단편에 공감할 내 나이 대와 경험을 짝짓기하며 즐겼다. 아프고 지치고 적당히 세상으로부터 나를 감추면서도 여전히 생활인으로 나를 책임지며 살아가는 단편 <하우스키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홈메이킹은 힘겹고 키핑 정도의 책임만 감당하며 살고 싶은 나의 탐욕...
수동적이 될 수 있는 일.
지루하더라도 실수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은 일.
일의 순서가 명확하고 시작과 끝이 확연히 보이는 일.
오늘 일이 다음 날로 이어지지 않는 일.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아도 되는 일.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을 포기한 이후 가장 이상적인 직업으로 느껴지는 일이다. 익숙해지면 정신만은 편안해지는 단순반복 노동에 성과와 효과가 분명하게 가시적인 일! 그 평안을 부술 변화가 내 일인 듯 몹시 두려웠다. 현실에서도 그런 환경이 사라지는 것 같아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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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기 싫어서 세 번 정도 덮었다 못 참고 펼쳐 다 읽었는데, 정현의 이야기 덕분에 토마토스파게티를 해먹었다. 몇 달이나 입맛도 식욕도 없다가 몇 주 전 비건레스토랑에서 먹은 토마토파스타가 감각을 많이 깨워주고 잠시 완벽하게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있던 것, 있을 거라 믿은 것, 유효기간이 끝났지만 아니라고 우기는 것(들), 사라진 것, 사라지고 있는 것, 잃은 것, 잃을 것 그리고 별나게 오래 유지될 것(들)... 어떤 상황이든 나는 어떤 존재로 견디거나 버티거나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소설의 품은 넉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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