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 바이러스 고래책빵 동시집 31
이성자 지음, 채인화 그림 / 고래책빵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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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렇게 바쁠까, 바이러스는 이제 인간을 바쁘게도 만드는 건가, 생각을 하며 동시집을 펼쳤는데, 제 짐작보다 사유의 크기가 훨씬 더 큽니다. 인류 문명이 스스로를 바쁘게 만들고 병들게 만들고 자연에 해를 끼치는 풍경들을 봅니다.

 

뇌에다 집중 투자하는 진화의 방식을 택한 인간은 어째서 이런 방식을 택했는지 문득 생각하곤 합니다. 80억에 가까운 개체수를 보면 유전자 확장이라는 점에서 성공적이긴 한데, 생존 기간이 그리 길지 못할 듯도 합니다.

 

할머니는 밭에서 뽑아놓은 풀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

토닥토닥 풀무덤을 만들어주며 미안해했지요. (...)

자연을 너무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머잖아 그 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까지도.

 

재난과 사고에는 분명 책임이 큰 이들이 있을 텐데,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전지구적 변화는 재앙이 되어 책임유무도 경중도 따지지 않고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더 무해하게 덜 유해하게 사시는 분들의 모습이 더 서글퍼 보이기도 합니다.



 

거미가 집을 지어요.

저재도 스스로 마련하고

일도 스스로 하면서

 

(...)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공해도 없는

집을 여러 채나 지었어요.

 

자연을 훼손하고 제 스스로에게도 유해한 집을 지어 사는 인간이 부끄럽습니다. 묻는 것도 지치지만... 우리 왜 이렇게 사나요. 그 와중에 부지런히 거미를 모함하고 모욕하기도 하지요.

 

눈만 뜨면 바빠바빠 하거든

벌을 받는지도 몰라

마음대로 자연을 잡아 가둔 죄

 

인간의 제외한 다른 모든 생명에게 못되게 굴고 제 이익을 챙겨서 저도 잘 사는 게 아니라니. 물론 촘촘하게 만들어낸 인간 사회 내의 차별 구도 때문이겠지요. 극소수의 부를 위해 다수가 말없이 복종하는 괴이한 풍경, 그 두려움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요.

 

미세먼지와 공해를 뚫고 내 집 베란다까지 날아와서 기어이 싹을 틔운 계획에 없던 풀과 꽃들을 뽑지 않는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처음부터 화분에 살던 화초보다 야생의 풀, 꽃이 훨씬 생명력이 강해서 무성하게 번성합니다. 의도치 않은 자연주의자의 화원처럼도 보입니다.



 

이 시집에서는 무단 점유하고 살아가는 어쩌면 원래 이 흙과 세상의 거주민들을, 사랑스럽게 보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미안해하며 반겨줍니다. 덕분에 오늘도 오만하고 거친 제 생각을 다시 가다듬습니다. ‘적당適當히 살고 싶은데 게을러서 여전히 유해하게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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