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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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의 감기로 대단치 않던 식욕도 입맛도 사라졌다. 감기약은 엄청난 졸음을 동반하는데도 습관이 무서운 건지 아직 덜 아픈 건지 잠들지는 못하고 있다. 혈당 조절을 위해 시간마다 약을 챙겨 먹는 식사를 한 지가 오래라서 먹는 즐거움을 많이 잊었다.

 

책쟁이(?)라서 현실의 식당 말고 달팽이 식당에 재입장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읽힐 것 같았다. 앓는 중이니까, 부드러운 등떠밈과 기적처럼 세상의 상처를 낫게 하고 살게 하는 마법이 좀 더 간절해졌으니까.


 

요리라면 잘할 수 있다. 그것만큼은 자신 있다.”

 

멋지고 부러운 일이다. ‘그것만은이라고 특정지어 자신 있다고 할 진짜 능력이 내게는 뭐가 있을까.

 

이 산골짜기 조용한 마음에서 요리를 만드는 일이 정말 실현된다면, 나는 이번에야말로 이 땅에 제대로 발붙이고 살 수 있다. 그런 예감이 몸속 저 밑에서 용암처럼 솟구쳐 올랐다.”

 

하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믿지만 하지 않는다. 아마 그게 많은 고민과 갈등의 원인일 것이다. 그저 요리만 하는 게 아니라 식당 개업이라니... 여러 생각이 끼어든 것을 털어버리고 그저 부러워한다. ‘용암처럼 솟구치는 예감은 확신 이상일 것이다.

 


숲속에서는 수런수런 살아 있는 것들의 기척이 났다.”

 

야생동물들이 겨울을 날 먹이가 줄어든 것 같아 걱정이지만, 산골짜기에 개업한 달팽이 식당의 식재료로 이렇게 어울리는 것들도 없다. 야생 곰이 좋아하는 산포도와 도토리... 똥과 밤송이, 길가의 돌멩이...

 

도시에 살던 시절보다는 작은 행복을 만나는 순간이 훨씬 많다.”

 

겨울이 오기 전에 더 부지런히 더 멀리 걸어가 보았어야 했는데, 후회도 지겨운 후회를 또 한다.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한 나는 동네 산책 이상을 못 할 것 같아 두렵다.(여전히 실내외 착용 중...) 어쩌다 마스크가 일상 필수품이 되었는지.


 

요리를 만드는 일이 내 생명을 지탱해 준다.”


엄마를 싫어하는 마음은 그 외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에너지와 거의 동등할 만큼 깊고 무거웠다.”

 

한편으로는 엄마 손맛이니 집밥이니 하면서 어머니들이 허리가 굽어도 포기하지 않고 추구하는 그 요리들의 연결이 없어서 나는 홀가분했다. 작품 속에서 비슷한 자리를 채우는 할머니라는 존재가 있지만, 요구라기보다는 추억처럼 느껴져서 불편하지 않았다.

 

애를 쓰면 산다는 일은 마음속에 흙탕물을 만드는 일이 맞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라 앉혀도 맑은 물이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르면 사람은 병이 드는 게 아닐까 싶다. 이 글은 어째 감기 바이러스가 쓰는 글 같네...

 


고운 엽서를 올 해가 가기 전에 누군가에게 보낼까 하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일 년 내내 엉망으로 멍청하게 살다가도 연말이라는 이유로 뭐든 진짜 중요한 일들을 해보리라 결심하는 시간이 귀하다. 망각이 특징인 인간에게는 그래서 숫자도 시간도 필요했나 보다.

 

용암처럼 솟구치는 식욕은 없지만 여전히 다정한 위로는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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