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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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말의 묘미를 모르고 산다. 이전에 시도했다가 잘 못 읽어서 뚝뚝 문장도 생각도 끊어지곤 했다. 그래서 어쩔까... 꽤 오래 고민하다가 그냥 읽었다. 친구들과 지인들의 추천에 귀가 팔랑거렸다. 그리고 표지가 주는 무겁지 않음에 겁도 덜 났다.

 

그래서 읽었는데, 기록을 남기기까지 또 오래 걸렸다. 뭐라고 해야 할까. 희생과 상처를 생각하면 이렇게 무거운 주제도 없는데, 저자는 측량 불가한 힘으로 재밌게 풀어서 들려준다. 그 지점에서 나는 웃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자주 혼란스러웠고 더 자주 서글펐다.

 

이 작품은 이전의 어떤 분류에 들지 않는 특별한 이야기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다른 문학작품들을 여럿 읽었고 어느 것도 이와 같지 않았다. 뭔가... 기록을 멋지게 남기고 싶은 욕심이 간단한 기록조차 막는 듯해 그저 쓴다.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형제가 많고 성장기 내내 친척들과 살며 부대낀 내 친구는, 끈적거리고 질척거리고 굵은 혈연을 끈이 싫었다고 한다. 어른이 되면 단출하고 건조한 관계를 누리며 훌훌 가볍게 살 거라고 여러 번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되었는데 문득 아주 쓸쓸하다고.

 

나는 일상을 이렇게 얽히고 설켜서 살 자신은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으려야 불가능한 아주 두꺼운 인간관계의 부재를 서러워한다. 결국 사람들과 진심으로 어울려 살 자신도 없으면서 부러워하는 중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래서 아버지의 삶을 설명한다. 세상이 아름답고 사람들이 좋고, 그래서 꿈이 컸던 아버지라고. 좌절 후에도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었다고. 그런 삶을 신기할 정도로 무심하고 냉소적으로 전한다.

 

그리고 크게 웃긴다... 사투리를 마스터했다면 몇 배 더 재밌을 듯해서 대상 특정 못하는 질투... 조금... 따라 읽어보니 내 발음은 중국어 같다는 가족들의 평가...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든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나는 불편한 모든 현실에서 몇 발짝 물러나 노상 투덜댔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버지를 비아냥거릴 자격이나 있었던 것인가.”

 

오늘은 눈이 아주 침침하고 어둡다. 집 안도 모니터도 최대로 밝혀본다. 그 탓인지... 사는 동안 화해와 용서가 어려운 너나 없는 삶들이 슬퍼서인지, 눈물이 난다. 아는 사람 상례에 다녀온 듯 들이마시는 공기가 차다. 현실이 무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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