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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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은 누구인가. 2017년 출간된 장편소설 속 사건과 대사와 인물들이 2022년이 되도록 자주 만난 이들, 지치도록 들은 대화 같다. 한편으로는 논의가 그토록 뜨겁게 이어졌구나 싶고, 다른 한편으로는 형편없는 무논리의 주장들이 득세한 세월이 길기도 하다 싶다.

 

화를 내려고 읽은 건 아닌데 화가 난다. <메모리얼 드라이브>에서 서술자가 한 명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생존자로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피해의 정도는 다르다고 해도, 반응도 이후의 삶(혹은 삶의 중단)의 형태도 다르다고 해도.

 

플로깅 - 의지적인 것은 아니고 산책 때마다 눈에 띄는 걸 조금 줍는다 - 을 할 때마다 생각없이 쓰레기 줍는 행위에만 집중하자고 결심하지만, 현존하는 교육과 문명의 무용함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그와 유사하게 폭력은 폭력, 범죄는 범죄, 싫다면 싫은 줄 알아! 라고 발작처럼 소리 지르고 싶은 기분은 섬세하게 고려된 요리조리 법망과 영리한 변호가 역겹다. 잠시 숨을 내 쉬고 나니 그 기막힌 순간마다 방어하고 거부하고 설득한 모든 분들의 노고가 뼈아프다.

 

수진이 생각하기에 강간은 단순했다. 정말 쉽게 분류할 수 있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을 때 성관계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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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논하는 남자 교수들은 여성 인권까지 신경 쓰는 진보주의자로 통하지만, 여자 교수들이 페미니즘을 논하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꼴 페미가 될 뿐이다.”

 

어쩌다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고 새로 만들 수 없는 혐오vs혐오의 대결이 다른 것들을 다 집어 삼킬 듯 요란한 걸까. 댓글에서는 거칠 것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여전히 좋은 이웃의 얼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일까.

 

오늘은 뭘 읽든 글이 죄다 사회과학식(?) 분풀이가 된다. 소설을 감상하고 문학을 만나는 법을 모두 잊은 것처럼. (강화길 작가님 죄송합니다...) 뉴스를 모른 채 살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된다는 논리가 또 설득적이다. 견디고 기다리는 일을 못하는 시시한 깜냥이라 그렇다.


 

강화길 작가님의 이 작품에는 물론 피해 상황이 자극적으로 나열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스스로 이겨내는 과정을 내내 응원하는 글이다. 얇은 성냥처럼 화르륵 거리지 않고 차분하게 침착하게 그리고 깊이 함께 분노하며 쓰신 글이다.

 

많은 문장들이 피해자가 갇힌 생각 없는 폭력적인 말들에서 빠져 나오라고, 그건 모두 잘못이라고 확신을 주는 손길이다. 체력을 안배해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연대다. 전체 내용을 잘 전달할 능력은 없지만 읽어 주실 분들은 언제든 그러실 거라 믿는다.


 

[판의 공식] 출처 :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이소호 시집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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