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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모락 - 우리들은 자라서
차홍 지음, 키미앤일이 그림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블라인드 북으로 만나 좀 더 설레고 궁금했다. 제목에서 짐작하듯 머리카락에 대한 재밌고 말랑하고 따스한 일화인가 했는데 인생 이야기였다. 길지 않은 문장에 압축되듯 떠오르는 삶의 순간들을 만나 코를 잡고 울음을 참으며 울었다.
주인공의 머리카락과 삶 자체를 풀어내는 담담하지만 내내 쓸쓸한 느낌도 감정을 휘저었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들의 머리카락과 그때는 몰랐던... 많은 것들이 더했다. 한 번도 빗어드리지 못한 머리카락들과 고단했을 삶도, 여러 해 씻기고 말리고 빗고 묶어주던 어린 삶들도.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오래 보다 삶을 통찰하는 눈을 갖게 된 듯 저자의 시선은 일상처럼 담담하다. 반면에 머리카락 얘기에 울컥하고 뭉클한 나와 심장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듯했다는 나의 친구처럼, 독자들은 이 책 덕분에 또 잠시 마음을 놓고 울고 싶기도 했다.
키미앤일이(키미와 일이 두 분)의 작업도 글과 더불어 멋지고 근사하다. 에세이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하기엔 최고다. 숫자가 커질수록 나는 좀 더 울고 싶어졌다. 모두가 무사히 자라서, 성장하고, 원하는 삶을 살다가,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며 100살을 맞는 세상이 부러웠다.
표지는 사랑스럽고 색감은 따스하지만 이 작은 책에도 온갖 사건과 뒤척임과 고민이 가득하다. 일상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현실이라는 것을 부드럽고 기분 좋게 확인시켜 주는 소중한 작품이다. 매끈하지 않은 질감이 시간이 스며든 삶의 결 같아 가만 쓸어 보았다.
“예전에는 머리를 자르면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는데, 이제는 하얀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네.”
평생 머리카락은 한 모공에서 일곱 번 정도만 새로 난다고 한다. 처음 난 머리카락과 마지막에 날 머리카락 중에 ‘나’를 더 닮은 것은 무엇일까. 머리카락도 표정도 다정하길, 부디 고약하지 않길 빌어본다.
“요즘은 아주 작은 일만 해도 갑자기 오후가 되고 어느샌가 저녁이 되는 것 같아. 때로는 옛일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지나가버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