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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계급론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4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0월
평점 :
책을 모셔둔 지는 좀 되었다. 물론... 한 두 권이 아니다. 눈길이 자주가면서 조바심이 드는 책들도 읽고, 시도만 하고 시작을 못하는 책들도 있다.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고 토론을 해야 좋은 책들도 적지 않지만, 다들 번다하게 사는 걸 아는지라 모임을 제안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게 나는 마치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식재료를 보고 자책만 하는 기분으로 <유한계급론>을 읽게 되는 날을 고대했다. 반갑게도(?) 이런 고민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현대지성에서 모셔만 둔 책 읽기 챌린지 이벤트를 마련해 주었다.
1일 1쪽이란 독서의 부담을 100% 덜어주는 마법 같은 표현이었다. 근래에 이렇게 즐겁고 기쁘게 뭘 덥석 시작한 일이 있나 싶게 밴드에 가입했다. 1일 1쪽의 마법이 내게 미친 영향은 대단해서 1일 1쪽 이상 매일 술술 읽었다. 그동안 눈을 가린 건 부담감이었나 싶게.
너무 느긋하게 즐기느라 마지막 며칠은 분량을 늘렸지만, 이미 익숙해진 문장과 내용 파악이 상당히 된 책이라 그 또한 무리가 없었다. 읽었고 기록이 남았다. 만족스럽다. 지난 달 일주일 독파 모임은 다들 울면서 진행했는데... 즐거운 독서의 비결은 ‘한 달’ 이구나.
무섬증이 가시니 다음 책은 뭘로 할까 싶은 생각이 분주하다. 11월 중에 2차 챌린지가 오픈될 예정이다. 처음처럼 설레고 기쁘다.
! 같은 고민이 있으신 분들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책’을 함께 읽는다는 - 그것도 다 다른 책 - 것만으로도 무척 다정한 댓글 소통이 가능한 다정한 공간이 생깁니다.
<유한계급론>
명징한 사유와 분석으로 쓰인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 한편에는 사는 일이 더 불편해질 것이란 두려움도 공존한다. 고찰과 실천을 요구하는 공부는 대개 금융 자본주의 사회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의 목록을 늘린다.
120년 전 - 읽고 나니 유사성이 많아서 그리 오래 전이란 생각이 안 든다 - 도금(gilded) 시대 미국 사회를 관찰한 책이 현대 사회를 분석한 사회학 보고서 같으니, 미국식 삶의 양식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패권이었단 자각이 절로 든다.
물론 빈부격차와 계급문화는 전 세계에 온존하는 질서이며, 이는 국경에 무관한 빈곤층의 보수화, 유한계급에의 동경, 흉내 내고 싶은 욕구로 인한 과시적 여가와 소비현상 - 유한계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상품을 소비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의 가치는 ‘주장’을 실증하는 필요한 데이터들이다. 베블런은 이런 자료를 일상생활에서 드러난 사례들에서 찾았다. 학술적 관례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가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엄밀히 따져보면 워크푸어와 가장 비슷한 삶을 사는지라, 불쑥거리는 감정의 기저에 온갖 복잡한 배경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분노, 경멸, 우월감, 만성피로, 좌절, 절망, 망상 등등. 다행스럽게도 좋은 이들을 만나 늘 배우고 살지 않았다면 더 이상한 인간으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자연스럽게 지혜가 비례증가하진 않지만, 너무 늦지 않게 물건과 소유에 대한 욕구를 절제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다. 그중에는 포기도 있겠지만, 할 수 있는 소비 중에서도 예쁜 쓰레기를 만드는 것들의 구매는 거의 하지 않는 것만은 만족한다.
반백년을 살아보니, 기성세대의 변화와 실천으로 세상을 개선시키는 일은 어렵다고 본다. 살던 대로 살 가능성이 훨씬 높다. 부끄럽고 미안하지만 젊은이들이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빈부격차의 위계를 인지하고, 부를 부러워하고 추구하기보다, 구조 자체를 뒤집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아마 여전히 주식 이야기를 하고, 돈에 상당히 휘둘리며 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깃발을 들면 지지하고 응원하고 함께 걸을 기성세대들이 많을 것이란 희망은 낙관하고 싶은 나의 의지이다. 소유와 소비가 명예와 존경의 바탕이 아니란 통찰이 사회의 상식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