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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만물관 - 역사를 바꾼 77가지 혁명적 사물들
피에르 싱가라벨루.실뱅 브네르 지음, 김아애 옮김 / 윌북 / 2022년 9월
평점 :
한 가지 주제를 다루는 역사서도 무척 흥미롭고, 물건(들)을 다루는 개별 역사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무척이나 일상적인 물건들 - 젓가락, 샴푸, 피아노 - 이 많이 등장합니다.
문명, 사회, 제도 중에 그냥 생겨난 것이 없듯이 물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발명하고 편리하게 바꿔온 것이지요. 인간이 사용하는 물건들에는 인류 문명과 역사, 기술, 사회, 정치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일상에서 심연으로 들어가는 여행처럼 물건의 역사는 접근하기 쉽지만 깊기도 하지요. 더구나 세계사 만물관이니 자체로 흥미로운 물건들이 한 가득이고 세계사라는 큰 틀에서 형성된 얼개를 배우는 것도 유익하고 재밌지요.
“흥미로운 사물과 이야기가 큐레이션된 박물관에 가깝다. (...) 우리는 일곱 가지 큐레이션에 배치된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나가는 동안 대륙과 바다를 넘나들며 수십 개의 국가와 지역을 탐험할 예정이다. 각 사물에 깃든 역사를 알아가는 동시에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을 맛보면서 말이다.”
‘물건들’의 역사이니 1.연원 2.형태 3.용도 4.변화 5.해석을 살펴보는 과정이 깔끔하고 새롭습니다. 잘못 알고 있던 것, 용도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 것, 도대체 왜 그랬나 싶게 이상한 해석과 과도한 의미 부여가 있던 물건들도 있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소개는 않지만 - 샴푸와 타이피스트는 정말 놀랍네요,
“여성 타이피스트는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여성성’을 보여주었는데, 이 자아실현적인 성격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사회 일각에서는 타이피스트가 성적, 사회적 질서를 무너트린다는 이유로 타이피스트라는 직업의 여성성을 ‘순화’하려 했다.“
역사서를 읽을 때마다 인간은 참 자의적이고 수다스러운 존재라는 확신이 듭니다. 발명과 발전은 서구사회가 독점한 역사처럼 느껴지는데, 한편 사실이지만 완전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덜 알려지고 저평가된 발명품들, 차용되어 변형된 것들도 많습니다. 저는 동서양의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물건 중 하나가 젓가락이라고 생각해서 젓가락 등장이 반가웠습니다.
인류의 여러 특성 중에 ‘호모 파베르’의 능력이 발휘된 결과가 지금 세상을 가득 채운 - 대부분이 쓰레기라는 게 통탄할 점이지만 - 물건들입니다. 분명 편리를 위한 영리한 행동이었고, 덕분에 생존에 유리한 조건들을 확대했지만, 현실과 미래를 떠올리면 복잡한 심정입니다.
21세기의 인류가 생존을 위해 마스크를 구하려고 줄을 서고 두려움에 떨었던 시절이 직전입니다. 그 원인은 순환이 불가능한 재료들을 고민 없이 사용하고 남용하여 환경을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호모 파베르는 언제 어디서 멈춰야했을까요. 혹은 이 능력은 필연적으로 우리는 어긋난 길로 데려갈 운명이었을까요.
“세계적인 재난의 원인이 된 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어긋난 현대성이었지만, 개인의 손에 들린 것은 탈현대적이고 원시적인 마스크 한 장뿐이다. 현대성이 외치던 의기양양한 예언은 이제 가느다란 끈 하나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