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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아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평점 :
드라마를 다 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소재가 주제가 공감할 수 없기도 하고 호흡이 지루하기도 하고 몇 회 못 보고 더 볼 이유가 없어지고 만다. 그런데 <봄밤>을 봄이 다 가도록 보았다. 주인공들 설정이 막장 드라마 전개에 적합해서 울고불고하면 당장 그만 볼 생각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정답을 제시하는 이도 없고 주인공도 몇 회에 걸쳐 모르겠다, 모르겠다고 한다. 생각하고 고민하는 캐릭터란 뜻이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현실이 당연하고 아름답고 불편한 것 없는 가부장들에 맞서는 시간과 고민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견이 세상을 바꾼 것들 중에 호주제 폐지는 한 때나마 인간이 맑은 정신이 되어 무척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그것도 법정에서 이뤄낸 드물고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만 바뀌고 제도는 공고하다.
명절에만 그 제도가 힘을 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징적인 풍경을 보여 왔던 것은 맞다. 명절 증후군과 명절 후 이혼 급증 사례들은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제도에서 탈출한 이들의 기록일 것이다.
이혼하고 이혼브이로그 유튜브를 연 후 저자는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혼을 해도 안 해도 결혼을 해도 안 해도 심지어 중상을 입도록 맞고 살해당해도 여성은 욕을 먹는다. 그러니 나는 한 마디도 더 보태지 않고 그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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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몇 년도? 여긴 어디? 싶은 사연들도 있었고, 짐작보다 더 씩씩하고 유쾌하고 복잡하게(?) 활동을 하는 저자의 낯선 삶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혼 전에도 이혼 후에도 사람은 살아간다. 이혼, 실패, 인생 끝! 이런 공식은 없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집안에서 안하면 큰일이 나는 종교처럼 제사를 (남의 자식을 부려) 열심히 지내지만, 전 국민 모두가 제례를 챙기는 양반이었을 리가 없고, 모든 가부장이 제를 통해 기려야할 존경스러운 인물이었을 리도 없다.
인류는 가부장제가 아니라도 생존할 수 있다. 없다고 절대 세상이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제도는 우리를 멸종으로 더 빨리 몰아간다. 가부장들이 남김없이 지배한 인류 문명이 도착한 곳이 어딘지는 지금 우리에게 닥친 여러 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살아보자, 버티고 견디며, 끈질기게. 드물게 들리는 소식 중에는 그래, 2022년이 맞구나! 싶은 변화도 분명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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