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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평점 :
<영원한 유산>에서 만난 할머니와 작가는 한 장의 사진이었다. 한국 근대사극 같기도 한 책을 읽고 도무지 글로 정리가 되지 않아, 영원히 고통 받게 되는 건가, 그런 과격한 생각도 했던 작품이다. 이미지만 있던 두 분의, 언어가 아닌 대화를 들을 수 있어 즐거움이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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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평화는 고요함과 거의 동의어였다. (...) 어딘가 할머니의 숨결이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는 어린 날의 작은 방일 것이다. 그곳에 인간의 언어는 없다.”
읽는 동안 그리운 나의 할머니를 내내 떠올릴 수 있어 행복했다. 여러 해 키워주셨다. 먹여 주시는 것만 먹었으니, 어릴 적엔 김치란 양념이 묻지 않은 직사각형 배추 줄기로, 구운 생선이란 반듯한 직사각형 조각으로 인식하며 호사스럽게 성장했다.
채식을 한 지 오래되었지만, 어릴 적 할머니가 만들어 입안으로 넣어 주시던, 참기름 향 가득하고 아삭한 배가 섞인 쇠고기 육회는, 아주 맛있고 행복했던 몸의 기억이다. 덕분에 나는 육식 포기가 아주 쉬웠다. 세상 어디에서도 그 맛을 찾을 수 없으니까.
“할머니가 물려주신 대부분의 것들이 이런 식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조용하고 작아서 나는 그것의 중요한 의미들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 나는 숲의 습기를 흠뻑 머금고 자라는 초록 이끼처럼 그 안에 살았으며 중요한 것들을 배운 줄도 모르고 배웠다.”
헤어지기가 울다 죽고 싶을 만큼 사랑했지만, 할머니와 내가 서로의 사랑에 대해 물은 적도 의심을 한 적도 없다. 그런 완벽하게 불필요한 헛짓은 할 필요가 없었다. ‘말 없는 사랑’을 주신 저자의 할머니처럼, 내가 배운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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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있고 싶고 함께 하고 싶고 헤어지기 싫고, 좋아하는 일을 돕고 힘든 일을 덜어 주고 맛있는 걸 먹여 주고 뭐라도 ‘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랑이다. 피곤해도 아파도 몸을 일으키게 된다. 정말 사랑하는 지 진심을 말해보라고 묻는 건 아주 슬픈 요청이다.
“지지와 격려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진정으로 힘이 된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받을 때 진짜 산소가 되어 그의 폐로 스며들고 근육에 힘이 된다. 지지와 격려가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서서히 긍정적인 힘을 잃고 부담이 되어간다.”
저자의 할머니와 내 할머니를 떠올리니, 아는 데도 잠시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이 더 아프고 큰일이다. 모르는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아는 데도 못하는 건 부끄럽다. 쉬운 나이와 체력 탓을 하며 짜증과 화를 느슨하게 풀어주는 건 아닌지 다시 반성했다.
“나는 ‘야단침’의 효용과 쓸모에 대해 늘 고민하고 회의했다. (...) 내 성질과 좌절감에 못 이겨 폭발하고 있을 뿐, 이 행위는 아이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무용한 것에 애를 쓰는 어리석은 일은 제발 그만하고 싶다. 말을 조심한다고 하면서 잡문에서 불쑥, “내 말이 옳은데 왜 못 알아 듣냐”거나 “옳은 일에 왜 함께 하지 않냐”는 토로를 불편하게 내비친다. 살아보니 그렇게 진행되는 반듯 깔끔한 일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을이고 명절이라 세세하게 그리워지는 내 할머니, 저자도 그러시겠지 짐작해본다. 책을 통해 배운 대로, 이제 연령불문 반갑게 안부를 묻고 응원하고 공감하는 마법의 주문을 남발하려 한다. 그렇게라도 덜 힘들고 덜 불편하게 한 고비를 넘겨보자. 아이든 어른이든.
“저런, 이라는 말 속에는 정확한 공감이 숨어 있는 거야. 아이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 놀라고 속상해하는 마음을 알아주는 말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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