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김중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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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라지게 하고 싶은 물건을 이 세상에서 지워드립니다.”


 

생각나는 물건이 있는데 그 물건 모두를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도 그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아무 소용이 없을 듯하다. 딜리팅 사무소 OPEN했다는 소식과 딜리팅 의뢰서 보고 신났다가 급 기분이 가라앉는다.

 

무기를 만드는 지식 정보를 어떻게 다 없앨 수 있을까. 고대 흑마술을 전수받은 전설의 딜리팅 고수라면 가능할까. 저 의뢰서에 내 이름을 적으면 어떻게 될는지, 한 밤에 촛불 켜고 서명해봐야겠다. 심신의 통증이 지겨워...

 

물건이든 생명이든 제도와 법이든, 무언가를 만들어 본 이들, 만들려고 애쓴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만드는 일이 얼마나 지난하고 어렵고 고된 일인지... 요즘 짜증과 어리광이 늘어서 오늘도 친구에게 지혜를 빌려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도 이제는 빨갱이, 병신, 등신... 그런 말 하는 사람을 정상으로는 안보는 사회가 되었잖아.”

 

부수는 것, 망가뜨리는 것, 망치는 것은 만드는 일보다 아주 쉬울 것이라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런데... 범죄에 악용된 자료들, 끈질기게 피해자를 괴롭히는 유통물들, 아무리 고민해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도 분명 있다. 인간이 저지른 관리 불가능한 것들이 너무 많다.

 

의뢰를 할 때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지만, 딜리팅이 완료됐다는 소식을 들으며 그때부터 의뢰인의 감정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걱정과 긴장이 사라지면서 잘 쌓아두었던 감정의 댐이 무너지는 것이다.”

 

제목만큼 설정이 흥미진진하다. 마치 범죄 추리소설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좀 다르다. 어쨌든 나는 현실의 기대를 섞어 작품 속 이야기 전개에 집중했다. 어느 쪽이라도 속 시원한 결말을 볼 수 있길 바라며.

 


이건 최후의 방법입니다.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골라야 할 때 쓰는 방법입니다.”

 

서양회화의 기법을 차용하여, 세상의 차원을 늘리는 암시를 넣고, 명칭과 달리 지우는 것이 아니라 실은 더하는 사람. 더하는 행위로 지우는 사람이 딜리터이다. 숨기는 행위는 더하기이고 숨은 진실을 드러내는 일은 지우는 일이다. 필요한 능력은 흑마술!

 

내가 만진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걸 지켜보는 건 진짜 힘들어요. 처음에는 보고도 믿기 힘들었어요. 진짜 웃기는 일 아니에요? 내가 어떤 물건에 집중해서 그 물건에 감정이입을 하면,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무슨 이런 개뼈다구 같은 운명이 있냐고요.”

 

베스트셀러 작가, 사라진 여성은 사귀던 사람, 거듭되는 딜리팅 의뢰, 능력자들, 초능력자들... 살짝 복잡하지만 전개는 무리가 없다. 기대하던 반전도 있다. 장르 문학이지만 낯설고 새롭다. 출간작은 내용이 변할 것인지, 어디가 변할 것인지 상상해 보았다.

 

주인공을 포함해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좀 더 입체적이고 매력적이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서사가 부족해서 몰입이 깊이 되지 않는다. 분량에 대한 고민이 있겠지만. 대화체는 전개는 빠르게 하지만, 역시 몰입에 방해가 되는 면도 있다.

 



블라인드 가제본이었는데 김중혁 작가님의 신작이다. 반갑고 기쁘다. 정식 출간본에서 변화된 부분들이 있을지, 무엇일지 몹시 기대된다. 힘껏 축하드리며 현실의 내가 딜리팅이 최후의 방법이라는 걸 잊지 않고 살기를 내 자신에게 당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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