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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군가의 소원이기 때문일 테죠
권순오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7월
평점 :
화내지 말고 즉각적이고 거친 반응도 보이지 말고 거리를 유지하며 겸손하고 씩씩하게 살아보자고 결심한 지 하루 만에 화가 치밀었다. 아무도 나를 지목해서 괴롭히지 않는데도 혼자 무너지는 어리석은 삶이다.
그래도 그런 감정을 불덩이 그대로 쥐고 있다 더 심각해지는 행태는 안 하니 그나마 나이 든 덕을 본다. 인간사가 추악할 땐 우주를 들여다보며 잠시 피하거나, 아름다운 것들에 주목하는 다른 인간사를 찾아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시집은 일단 읽는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따라서 호흡도 느려지고 그러다보면 화르륵 거리는 조급한 기분도 가라앉는다. 타인을 미워하기 보단 타인의 존재가 누군가의 소원이라고 믿는 제목은 말랑하고 달달하다.
제한적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에서만 가능한 표현이라기보다는 어제 읽은 물리학 책 덕분에 우주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소원이라고 느낀다. 모두가 기적이다. 어째서 태어나는 것일까.
우주가 한없이 넓어서 지구에서 인간이 저지른 모든 추악한 일들이 말끔하게 무화될 거라 생각하니 우주적인 위안이 된다.
천천히 읽으며 내가 모르는 이들의 삶의 풍경을 느껴본다. 다른 무엇보다 굴곡이 닮아 있다. 깊이도 넓이도 다르지만 누구나 땅 속으로도 꺼져 들어가고 하늘 위로도 날아본다. 자신의 필요에만 집착했다가 누군가를 응원하고 도움을 전하기도 한다.
무심하게 지나친 많은 것들을 후회하고 잊지 못하는 것들에 시달린다. 그리운 이들을 그리느라 서글프기도 하고 헤어질 수도 안 보고 살 수도 없는 인간관계로 지쳐간다.
인생살이를 다 아는 듯한 이들의 문장이 때론 내 삶에도 들어맞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구태와 의연을 다 무시하는 기쁘고 설레는 새로운 관계와 풍경이 채워지기도 한다.
인간이 아무리 괴롭히고 죽여도 식생을 바꿔가며 번성하는 식물들은 무섭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겁 많은 개가 크게 짖듯이 인간이 울부짖는 위험은 제 식량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비가 잠시 그치자 자외선이 무섭게 내리쬔다. 수해복구 현장에 누구보다 빨리 달려간 사람들이 이웃과 시민의 절망과 울음을 걷어 내며 땀을 비오듯 흘리는 소식을 듣고 기껏 후원이나 하는 나는, 간만에 땀을 엄청나게 흘리며 느긋하게 걸어 다녔다.
인간도 도시도 자연도 다들 조금씩 다쳐서 회복 중인 것처럼 이전보다 적요했다. 사는 일이 불안할수록 그리운 이들이 문득 사무치게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