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프랜 리보위츠
프랜 리보위츠 지음, 우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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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복귀겨우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우울하다그러니까 오늘은 이 책이랑 지내야 한다이해든 오해든 배가 아플 때까지 자주 웃을 수 있다물론 이건 저자의 독설과 독자인 나의 짜증 혹은 스트레스가 화학적 반응을 보일 때에 한정된 현상이다.

 

침대에서 벗어나볼까 고려해본다지나치게 활기찬 생각이라 이내 접는다.”

소파가 이긴다또 이렇게 가구가 승리한다.”

 

내가 잠을 좋아하는 이유는 잠이란 즐겁고도 안전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잠이란 책임에서 해방된 죽음이다.”


 

격하게 웃다보면 배가 떨리는 것을 느낀다몇 년 간 실내형 인간으로 점점 더 오래 살다 몸도 정신도 물컹해졌다얼른 잊고 더 읽는다책 속에는 함께 비웃을 면면들이 다채롭게 담겨 있다놀랍게도 시대는 1970-80년대뉴욕이다역시 나는 20세기형 인간...

 

빈정거림이나 비웃음이나 낄낄거림을 늘 좋아하진 않지만거대한 기계 같은 조직 속에 살다보면대책 없이 뭔가를 바꿀 수 있다거나도덕적 교훈이 설득력이 있다고 믿거나희생을 기꺼이 치르고 애쓰려는 모든 욕구와 의지가 말라붙는다그러니 달리 할 것도 별로 없다.

 

계산이 빠른 나는 아무리 확인해도 어느 조직이든전체 디자인을 바꿔 재설계하는 일보다 문제를 일으키는 부품을 교체하는 비용이 적다는 것이 보이고문제 해결에 드는 비용이 재설계보다 적을 때까지는 굳건하게 버틴다는 합리적 계산을 모른 척 할 수 없게 된다그야말로 냉정한 진실이다.

 

수명이 500년쯤 되면 하고픈 일 목록을 만들어 격하게 이것저것 해볼 텐데당장 내일도 어찌 될지 모르는 미물의 찰나의 삶을 핑계로 계속 시시하게 소소하게 살려한다대신 사회 변혁을 위해 희생을 기꺼이 치르는 이들에게 소액 후원이나 하자고 예전에 결정했다.

 

단조롭고 지루하게 사는 지라 여성레즈비언유대인뉴요커비평가에세이스트대학생 과제 대필청소부개인 기사택시 운전사포르노 작가칼럼니스트 등등의 이력을 가진 저자가 (분하도록부러워진다.

 

친절하고 절묘한 번역이고 쉽게 이해가 되지만 역시 원문이 궁금하다독설을 통해 냉정한 지성을 표현한 글은 더구나 원래의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더 궁금해진다언어란 곧 사유이니발화자나 저자의 지성체계 자체일 것이다.

 

아쉬움을 잠시 두고 가만 읽다보면 70-80년대 뉴욕유행사회의 풍경예술계의 면면을 힘들이지 않고 슬쩍 배울 수 있다거의 모든 대상에 대해 팩트를 가차 없이 날리는 저자이니 의견이 아니라 기록 자료로서 신뢰성도 있지 않을까 싶다덕분에 맘 편히 구경했다.

 

뉴욕에서는 승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책임을 돌리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건물이란 크게 둘로 구분할 수 있다싼 건물과 비싼 건물.”

혼자 신나서 정신 나가면 될 것을 그마저도 능력이 부족해서 남의 정신까지 나가게 하는 이들이 문제다.”


 

어제 멋진 글을 읽고 나도 겸손하고 씩씩하게 살면 된다고 가벼워졌는데징징거리던 버릇은 말끔히 사라지지 않고미리 우울할 준비를 하는 듯하다그러지 말아야지장마 소식과 가을 소식이 들린다매일 조금씩만 더 필연코 즐겁자...

 

즐거움을 얻는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요즘 세상엔 사람 죽이고도 죄책감 없는 이들도 많고 국경에서 어린이들을 철창 안에 가두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죠그런 사람들도 멀쩡한데 제가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하죠특히 나이를 먹어가면서 즐거움이 뭔지 생각해보면 그게 뭐든 상관없이 즐겁다면 그냥 하면 되요그냥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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