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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주는 위로
이미숙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6월
평점 :
국내산들은 정말 많이 가보았다. 한 때는 산행 지도를 구해 표시해가면 다녔다. 동네 뒷산처럼 간 곳들도 있고, 한번으로 족한 곳도 있고 여러 번 가고 싶은 곳들도 있었다.
여태 기억에 남은 것은 하필 해병대 훈련 중인 걸 모르고 놀러 갔다 산 정상이 해병대 트레이닝복으로 붉게 물들 희귀한 장면을 본 가을 오대산(같이 도시락 먹음),
운동화와 원피스 입고 산책하듯 가다 정상에 도착해서 너무 놀랐고, 높이에 비해 험산이 전혀 아니었으며, 음료수 한 병들고 슬리퍼 신고 동네 마실 나오듯 오신 분도 계셨던 여름 한라산(대신 내려올 때 무릎 쪼개지는 줄),
정상에서 몸집이 큰 까마귀들이 먹을 거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와중에, 등에 낫 하나씩 꽂고 등장하신 심마니 부부를 만난 스릴러의 배경과 같던 용화산(까마귀에게 과자 다 뺏겼고 부부는 친절),
눈이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경사 가파른 오색코스로 대청봉에 도착은 했지만 저체온증에 탈진으로 기절해서... 깨지 못했다면 헬기타고 방송도 탈 뻔했던 겨울 설악산(잘 자고 일어나서 커피 마시며 일출도 봄),
마지막 산행은 역사교사인 친구 부부와 폭염에 경주 답사 여행 갔다가 열사병으로 안 쓰러지고 다행히 한옥 숙소에 도착해서 기절했던 2018년 여름 경주 남산(친구의 역사문화 강의 아무 것도 기억 안남, 뜨거운 황남빵과 국밥 먹자는 친구에게 화냄).
유럽은 언덕과 산의 구분이 아주 엄격해서, 내 기준에선 산인데 공식 표기는 hill이나 moor였던 영국의 필드워크 현장들. 스코틀랜드는 어디가 산이라기보다 여기부터 highland라고 하기에 그런 줄 알았다. 그리고 히말라야나 에베레스트 이런 산은 못 가봤다. 기회가 있어도 안 갔을 것이다.
친구는 마스크 상태라도 산에 가면 위로가 된다고, 힘을 받는다고, 운 좋으면 향기로운 야생화도 만난다고, 몸의 통증도 줄어든다고 하지만, 나는 도저히 마스크 속에서 헉헉 댈 엄두가 안 났다. 산책도 하다보면 마스크 착용 상태에 몹시 파괴적인 기분이 든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니 앞서 걷는 친구의 흰 등만 보고 따라 걷던 야간산행도 기억난다. 한번으로 족한 경험이었지만, 잊지 못할 기억이다. 정상에서 친구를 와락 안을 뻔~ 겁먹었단 얘기다.
그럼 산이 주는 위로는 무엇일까. 왜 산에 가는 것일까. 물이 좋고 물속에 잠겨 있는 걸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데 부지런히 산에 다닌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물으면 주저 없이 물이 좋다고 한다는 저자의 글에 웃으며 나는 내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나무가 있으니까. 공기가 달콤하니까. 높이가 달라지면 시선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호흡이 달라지니까, 잠시라도.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숨을 쉬는 정직한 움직임이 좋으니까. 거기엔 어떤 속임수도 비법도 지름길도 있을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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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은 끊이지 않을 듯하고 등산은 여전히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다. 가고 싶은 산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찾기 어려운 식욕처럼 확실히 무언가를 잃은 것도 같다. 위로가 더 필요한 상태인가, 저자가 정답은 고민도 말도 아니고 ‘한다’는 행동이라고 해서 조금 설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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