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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목욕탕
마쓰오 유미 지음, 이수은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7월
평점 :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여섯 살 어린 동생이 있고 나는 해고를 당했다. 현실이라면 암담하다. 작품 속 주인공도 막막해서 부모님 묘비 앞에 서 있다. 소설이라 다행스럽게도 얼굴도 모르는 큰삼촌의 유언과 유산을 전해 줄 변호사의 조수가 등장한다.
“학교에 가는 것, 일을 하는 것, 세상은 젊은이들에게 그중 하나를 요구하고, 거기서 벗어나면 '니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일종의 동경을 가진 옛날식 공중목욕탕이 유산이다. 추억이 별로 없어서 더 궁금하다. 너무 달아서 못 마실 것 같은 바나나 우유도 한번쯤은 목욕 후 마시고 싶었다. 다 커서(?), 실은 30대에 친구들과 세신사가 일하는 목욕탕에 가서 세신을 경험했다.
상상보다 무척 민망한 일이었지만 워낙 사람을 편하게 해주시는 입담을 가진 분들이라서 다행이었다. 미용실에서 타인이 머리를 감기고 말려 주는 일이 무척 기분 좋은 호사라고 늘 느끼는데, 세신 역시 참 호사스런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바나나 우유 대신 맥주를 마셨다.
이 상속에는 조건이 있다. 경영을 가능한 계속하고, 근문 중인 직원 두 명을 유지하는 것. 상속 받은 건 단지 건물이 아니라, 동네 전체인 듯해서 또 부러웠다. 현실 이사는 무서운데 자매가 이사 오는 장면이 좋았다. 물론! 이제 본격적으로 ‘무슨 일(들)’이 생긴다.
스포일러라 소개할 수는 없다. 세상의 혼란을 막는 작전이 동네 목욕탕에서 펼쳐지다니! 심각한데 재밌어서 많이 웃었다. 일상 미스터리답게 수수께끼를 일상적으로 풀어 나가는 즐거움이 있다. 비밀과 단서를 찾아보시길!
가능하면 샤워 시간도 줄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몸을 담근 지가 오래다. 몸살감기가 올듯하면 시도하는 드문 일이다. 따뜻한 물이 체온을 올리고 근육을 풀고 긴장을 흘려보내는 목욕탕은 일상의 피곤과 피로를 두고 쉬는 노곤하고 느긋한 시공간이다.
사람들의 실질적 접촉이 점점 줄어드는 시절이라는 새삼스럽고 뒤늦은 생각을 해본다. 목욕탕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이웃이란 동네사람 이상의 관계였을 거라고 상상해본다. 몸이 풀어지면 마음도 풀어져서 고민과 어려움도 나누고 돕기도 하고 그랬을 거라고.
“결국 남자가 나쁜 짓을 해도 단순히 장난으로 치부하잖아. 당한 사람이 오히려 마음을 쓰거나 친구를 잃기도 해.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도 남자들은 여자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잖아.”
운이 좋아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고 양육의 책임은지지 않았지만 내게도 여섯 살 어린 동생이 있다. 그래서 내내 작품 속 동생의 일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스포일러라서 소개할 순 없지만 다행이다.
“나는 사오가 사람들하고 잘 어울릴 수 있도록 극복하면 돼,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게 쉬우면 얼마나 편할까.”
여름이지만 따뜻한 물이 그리워지는 내게는 부재한 것들이 가득한 부러운 곳의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정을 알고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도 물리칠 수 있는 혼란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현실이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