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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7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평점 :
고전이 읽기 어렵다는 통설은... 한편으로는 과장, 다른 한편은 번역의 문제일 뿐인지도. 독일문학에 대해 전공한 것도 독학한 것도 아닌 나는 을유문화사의 <파우스트>를 재밌게 잘 읽었다. 뭘 몰라서 동화책 읽듯 읽은 것이라 하면 할 말은 없지만.
혼자 읽으면 혼자만의 생각으로 오독이 쉬워서 친구들에게 강권하고 같이 시작했으나, 6월 말부터 제각각 시작된 휴가로 이 책도 혼자 읽고 기록한다. 완역본을 읽는다는 즐거움이 컸다. 시공간에 무관하게 지금의 내 현실을 울리는 문장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하여 너는 닥치지도 않은 모든 것 앞에서 벌벌 떨고, 결코 잃어버리지도 않을 것에 대해 눈물을 흘려대는 것이다.”
“하지만 황금과도 같은 이 아름다운 시간을 우울한 생각으로 망치지는 말자!”
“인간들이란, 자신이 잘 모르는 일이라면 비웃기 마련이지.”
“내 가슴은 이제 지식에의 욕망에서 치유되었으니 (...) 인류 전체에 주어진 것을 나 자신의 내면으로 느껴보려 하네. 나의 정신으로 가장 높고 가장 깊은 것을 붙들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내 가슴에 쌓으면서.”
“모든 잡념을 떨쳐 버리고, 곧장 세상 속으로 뛰어듭시다! (...) 이 궁리 저 궁리나 하는 놈은 황량한 들판에서 악령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짐승과도 같지요.”
“열어야 할 자물쇠도 빗장도 없고, 그저 적막 속에서 이리저리 헤매게 될 거요.”
“그러면서도 완전히 버림받은 채 혼자 살고 싶지는 않아 결국엔 악마에게 몸을 맡겼던 거야.”
“당신이 만일 망망대해를 헤엄쳐 다닌다면, 눈앞에 아득한 광경만 펼쳐지겠지만, 그래도 밀려오고 또 밀려오는 파도는 볼 수 있을 겝니다. 물에 빠져 죽을까 두려움에 떨면서도, 아무튼 무언가를 볼 수는 있지요.”
‘속속들이 공부할수록’ 하면 할수록 뭘 모르는지만 더 알게 된다. 정확히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만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어떻게 인지하고 질문할 수 있을까. 이토록 허무할 수가 없다.
이 허무는 단계도 있는데, 그나마 알아낸 것으로도 아는 바대로 현실을 바꾸기가 지난하다는 것, 혹은 불가능하다는 것.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다 같이 해야 하는데, 우리는 결코 충분히 빠르지 못할 거라는 것.
이런 상태는 거의 저주와도 같은데, 생각 속에서 우리는 ‘완성된, 이상적인, 가능한’ 세계를 상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그 동력을 찾아낼 수 없다는 절망감은 실재하고 강력하다.
그래서 선택을 해야 한다. 좌절하고 포기하고 혹은 너무 슬퍼서 막 살아버리거나 살기를 멈추거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괴리를 받아들이고 감수하면서도 한 걸음이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더 걸어보는 것이다. 미완을 애도하지 않고 미완의 존재로 살아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