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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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도 한국어판도 책이 아주 아름답다표지를 한참 보다가 글을 안 읽고 삽화와 사진을 먼저 보는데 골몰했다격렬한 운동이 아닌 산책처럼 책의 만듦새도 그러하다천천히 찬찬히 만나도 괜찮은 책.

 

영국에 살 때 워낙 햇볕이 반갑고 귀하니 해가 있는 동안에 가능한 자주 산책을 가려했다덕분에 어느 시간대 햇살과 공기와 분위기가 화면처럼 그림처럼 추억 속에 각인되었다.

 

무척 수다스럽고 사랑스럽던 빨간 가슴 로빈robin, 강렬한 색채로 존재감을 드러내던 폭스 글로브즈도fox gloves, 그땐 몰랐던 와일드 갈릭wild garlic(산마늘명이나물), 간혹 큰 깃털을 떨어뜨리고 날던 고니swan, 새벽 산책에 마주친 사슴deer, 밤 산책에 만나지 말았어야 할 오소리badger, 잠시 방심했단 손을 쏘인 네틀nettle, 동양의 이야기 속에선 마법도 부리고 사람으로 변신도 하던 작고 여린 영국의 여우foxes.... 여전히 가깝게 소환할 수 있어 행복하다.

 



경이로운 여정을 마치고 우리 집 정원에서 쉬는 저 새를 보니 전율이 느껴진다제비가 목적지에 도착했듯이 나 역시 또 한 번의 겨울을 이겨낸 것이다나는 안마당에 앉은 채 잠시 조용히 운다.”

 

걷기 명상을 배운 뒤고 매번 나를 우울과 통증에서 구원해주던 산책은 이 책의 원제처럼 항우울제remedy이기도 하고 그 이상이기도 하다.

 

그저 집 밖으로 오두막 맞은편의 가시자두나무와 보리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면에서 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반응이 일어난다.”

 

다른 건 못해도 휴가 중에도 산책은 가능한 자주 나간다한국에서는 동식물보다 온통 사람과 사람이 만든 구조물뿐이라서 섭섭하긴 하지만.

 

나는 다시 날마다 산책을 나가겠다고 다짐한다나에게는 자연에 몰두하고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그것도 지금 당장.”

 

나도 산책 일기를 적어두었다면 어땠을까 싶게 부럽고 감사한 책이다열두 달의 기록이라 참 좋다다르지만 같기도 한 한 해 다음 해의 벗이 될 줄 책이다.

 

지금 이 기분을 붙잡아둘 수 있다면나를 에워싼 야생식물과 곤충들로부터 느끼는 이 절대적 환희를 병에 담아두었다가 우울증으로 쓰러져 집을 나설 기운이 없을 때 열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삽화와 사진에서 잠시 헤어나와 7월의 회고록을 읽었다내가 아는 장소도 모르는 곳도 있다저자와 나의 7월은 영국 내에서라도 달랐겠지만산책이라는 처방이 필요했던 것은 공통점...

 

오솔길을 거니는 것은 숲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내 발걸음의 궤적을 더하는 나만의 정신적 만트라와 같다편안하고 익숙한 리듬을 따라 숲속에서 두 발로 하는 요가라고나 할까산책은 차를 끓이는 일상의 사소한 의식이나 털실 뭉치로 장갑을 뜨는 일처럼 마음에 위안을 주지만 그 느낌은 매번 다르다.”

 

먼 곳의 7월을 상상하며 가까운 곳의 7월 풍경을 만나러 오늘도 산책을 나갈 것이다.

 

태초부터 인간과 땅 사이에는 강력한 유대가 있었다우리는 야생의 장소에서 살아가도록 진화했다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연과의 단절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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