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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양장)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소설Y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십대가 된 아이들과 드디어 청소년문학을 같이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혼자 미리 기뻐할 때마다... 기대처럼은 성사되지 않았다. 청소년은 청소년문학에 관심이 없고 덕분에 나 홀로 독서 시간이 늘어가다 마침내 자발적인 중독자가 되었다.
고등학교가 초등학교보다 더 빨리 방학을 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도 기대가 커지는 즐거운 날이다. 휴가로 인해 자애로워진 기분으로 데이트를 즐겼다. <위저드 베이커리> 함께 읽기를 권하느라 현실 베이커리에서 너무 큰 소비를 했다. 뭔가 잘못되었다...
책을 사줄 수는 있으나 읽게 할 수는 없다. 오늘도 내가 읽는다. 지난달에 선물 받은 베이킹용 다크 초콜릿이 자꾸 눈에 걸리고, 거듭된 권유 실패에 입맛이 쓰고, 익히 아는 작품의 내용 또한 여전히 다크dark하고 씁쓰레하다.
신화에서 건너온 듯 설레게 하는 푸른빛의 표지와 제목은 달콤한 판타지를 기대하게 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철학과 문학과 사회과학의 절묘한 반죽에 더 가깝다. 유치하고 말랑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경애하는 구병모 작가의 격렬하고 황홀한 작품 세계이다.
[노 땡큐 사브레 쇼콜라 No thank you Sablé Chocolate]
“정말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고백 받았다면? 이걸 대답으로 주세요. 한마디로 ‘먹고 떨어질 겁니다.’”
범죄와 희생을 줄이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일 것이므로, 어디서 판매되면 좋겠다고 바라는 나의 최애 메뉴이다. 마법 주문을 넣을 능력이 없어서 기분은 초라하지만, 휴가 중에 <위저드 베이커리>를 재독하는 시간이 아니면 언제 할까. 더 완벽한 베이킹 타이밍은 없다.
“단, 모든 마법은 자신에게 그 대가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예, 동의합니다 / ☑️아니요,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답은 이전과 같다. “예, 동의합니다.” 별별 말 같지 않은 이유로, 이유랄 것도 없이 할 수 있으니 자신보다 약자를 공격하고 해치고 죽이는 일들이 하루도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 마법의 대가가 더 클 것이라 믿지 않는다.
“모든 강렬한 충동은 후각에서 비롯하지 않을까.”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재혼, 성추행이라는 누명, 도망... 환상 문학 속엔 피난처가 있지만, 현실은 어떤가. 집에 머물라는 판데믹 용 행정명령이 두려울 사람들의 처지가 나는 두려웠다. 가정이 안전하지 않다면, 바이러스에 확진되는 것보다 가정폭력에 죽을 확률이 더 높다면.
게으름과 부족한 식욕 덕에 먹는 게 그리 즐겁지 않는 나로서도 ‘빵이 지겨워지는’ 상황이 안타깝다. 먹고 싶어서, 맛있어서, 그리움과 행복으로 기억되는 음식이 아니라, 가족과 집에서 식사를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호구지책이었으니.
낮에는 빵을 먹고 저녁에는 쿠키를 구우며 ‘진절머리 나는 과거와 현재’ 대신 ‘미래’가 들어간 마법사의 레시피를 상상해본다. 제빵사가 건네준 오븐처럼 따뜻했을 집 열쇠의 온기를 생각한다. 살기 위해 도망가는 이들에게 마법도 없이 나는 무엇을 건네줄 수 있을까.
인간이 거주하는 곳곳이 불타고 있고,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기후대로 기온이 상승하고, 머리가 뜨거워지면 생각도 말도 어긋나서 서늘함이 늘 필요하지만, 아무리 작은 형태라도 함께 할 내 연대의 손길은 필히 따뜻했으면 한다.
그 대가가 내 상상을 넘어서는 마법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내 불안과 염려는 모두 틀렸기를 바란다. 미래가 늘 후회와 동시에 떠오르는 두려운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우리가 나눌 시선도 손길도 말도 행동도 모두 인간답고 따스하기를.
베이커리 바깥은, 문학 바깥의 현실은 어느 계절에도 춥고 어둡고 잔혹하다. 도저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서, 어디로도 피할 수가 없어서 절망과 죽음으로 귀결되는 일도 흔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 마법조차 불편할 정도로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첫 만남 후 시간이 꽤 흘렀지만, 내게 닿은 구병모 작가의 메시지는 한결같다. 슬픈 현실이 변하지 않았고 나도 그리 변절하지 않았다. 내 선택은 동일하다. 소중한 것을 대가로 고통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다. 선택지 N은 우리가 서로를 아프게 응원하는 방식이다.
“지금껏 잘 견뎌 왔다. 앞으로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 누군가 씹다 뱉어 버린 껌 같은 삶이라도 (...) 얼마 남지 않은 단물까지 집요하게 뽑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