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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큐레이션 - 에디터 관찰자 시점으로 전하는 6년의 기록
이민경 지음 / 진풍경 / 2022년 7월
평점 :
여행을 마치며
책 속 여행을 마무리하기가 싫어서 마음이 우물쭈물... 저항이 거세다. 책은 고스란히 내 옆에 머물 것이니 힘을 내어 이 책을 동네방네 알리기 위해서, 내 별로인 글이라도 하나 더 써보자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도쿄’를 큐레이션한 이 책의 마지막 기록은 돈을 줘야 살 수 있지만 돈만으로는 못 사는, 돈만으로는 계산이 안 되는 이야기로 정한다. 신화시대 이야기처럼 들리는, 멸종 직전인, 그래서 그립고 귀한 방식의 인류가 살아 보기도 했던 이야기.
내가 보수꼰대라서 과거와 가치를 미화하는 것이라 하면 그런 평도 그냥 받으련다. 산책을 하면서 인류는 기대수명은 늘렸지만 실제 삶은 점점 더 짧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고, 지킬 가치가 있는 것들에 따라 살지도 않는다.
덕분에 현실이 미래가 비상이다. 과학자들은 티핑포인트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하는데, 긴장도 위기감도 변화도 충분히 절박하고 빠르지 않다. 여전히 자본수익창출이 중요하고, 물가지표는 원유가격이 기준이다. 마지막까지 수익이나 창출하다 멸종되는 생물이 될 것 같다.
먼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으니 시간에 있어 무척 인색하다. 내 얘기다. 결과나 품질보다 처리시간을 더 줄일 수 있는 방식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니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매일 삶을 낭비하는 주제에 아껴서 뭐하려는 것인지가 불명이다.
일본에서 사는 친구가 고가로 이사를 간 후, 필요한 가구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부럽고 탐이 났다. 갤러리에 방문해서 4시간 이상 이야기하고, 집에 찾아와서 3시간 이상 고민하고, 가구가 단품 상품이 아니라, 사는 사람의 생활에 녹아들어갈 풍경이라 믿으시는 것 같았다고.
신발장도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현관에서 1시간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시더라고. 신발 보관 방식부터, 신발장의 추가용도, 현관 조명, 나무의 종류 등등... 자신이 알던 가구점이 아니었다고 무척 감동했다고 오래 얘기했다.
“오래 함께하고 싶은 좋은 품질의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쓰기 편하고, 우리의 시선이 오래 머물고, 그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물들을 만들고 싶을 뿐이지요.”
“그래도 뭐랄까, 자연과 친해지고 싶어요.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는 삶을 살고 싶네요.”
30여 년 경력의 디자이너 사루야마 오사무Saruyama Osamu의 물건들과 대화에서도 그런 철학이 세계관이 느껴진다. 패스트패션, 플라스틱, 일회용이 인간도 지구도 얼마나 망쳤는지를 생각하면, ‘편리하고 싼’ 상품을 기획/개발/판매하는 시스템의 얄팍함과 낭비를 느끼게 된다.
“오랜 시간 탐구하며 만든 것들이 주는 기쁨은 생각보다 크다. (...) 물건은 인간의 정신과 연결되어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일상에서 물건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물건은 인간의 정신과 연결되어있다고. 일회용을 쓰고 아무데나 버리는 인류는 기어이 인간조차 그렇게 쓰고 버리고 있다. 하청, 간접 고용, 임시라는 명칭으로 소모되다 생명을 잃는 이들은 어제도 오늘도 있었고 내일도 있을 것이다.
인류 문명의 큐레이션을 정독해야할 때가 아닐까. 혹은 이미 늦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