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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그리고, 타이베이 - 이메이의 어반스케치와 펜드로잉으로 기억하는 대만 여행
이명희(이메이) 지음 / 밥북 / 2022년 6월
평점 :
여행 방식은 각자 다르겠지만, 제목에 ‘걷고’가 있어서 공감하며 조금 웃었다. 대만에 가면 걷고, 걷고, 또 걷는다. 적어도 나와 동생은 그랬다. 따져보자면 한국에서도 한 나절을 걷기만 한 여행은 없는 듯.
여행지의 사진도 멋지지만, 스케치와 드로잉은 아주 특별하다. 누구나 할 수도 있지만 누구나 저자처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펜화를 좋아하는 나는 여행기라는 것도 잊고 도록처럼 천천히 작품들을 보았다. 멋지다.
걷는 속도는 스케치의 속도와 잘 어울린다. 천천히 평소보다 조금은 느리게. 마음이 편안해지니 짓눌린듯하던 기분도 둥실~ 가벼워진다. 일상이 무거우면 간절해지는 여행... 출장 말고 여행이란 그런 것이었지 박제된 기억도 떠오른다.
공항은 누구나 도착하고 머물지만 사진을 찍거나 그릴 생각은 못 했는데, 여행기라서인가, 공항 그림이 있어서 나는 기억 못하는 장소를 만나 반가웠다.
누구나 갈 것 같은 딘타이펑, 동생이 여기서 엄청난 과식을 했던 기억. 무척 맛있었다. 완벽했던 볶음밥과 향기롭던 생강채 생각이 난다.
야시장에서 뭘 사 먹진 않았지만 밤거리를 걷는 일은 즐거웠다. 셔츠가 터져나갈 듯 음식을 즐기던 많은 유쾌한 사람들, 다들 판데믹에도 무탈하게 즐겁게 지내고 계셨길...
시차가 1시간이라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중국과는 분위기가 참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대만도 홍콩도 그냥 좀 가만 두라며 살짝 화가 나서 망고 빙수를 먹었던 기억도 돌아왔다.
용산사에 가서 향을 잔뜩 맡았고 한국의 불사들이 고요한 것에 비해 사람들이 가득하고 떠들썩하고 늦은 밤인데도 사찰 내부에 잔칫상처럼 차려 놓고 다들 앉아서 먹던 모습이 생경하고 놀라웠다.
물건 사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달고 다닐 수 있는 작은 기념품을 샀는데 덕분에 일 년 정도는 여행을 복기하며 대화할 계기가 되어 주어 고마웠다.
어쩌다보니 동생과는 아시아권 여행만 함께 다녔다. 일본, 홍콩, 대만,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둘만의 마지막 여행도 아주 오래전이라 가물가물...하다. 대만은 2007년이었던가. 어이쿠... 15년 전...
한자권 문화의 옛 책인 듯도 하고, 오래 전 우리 여행처럼 예스러운 디자인의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든다. 앞으로 가게 될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아직은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지만 언젠가... 그리운 사람들을 보러 가게 될까...
무척 쓸쓸해져버린 위기crisis와 비상emergence의 시절, 마음이 간질거리다 서글퍼지기도 하는 멋진 책의 풍경들 속을 잘 거닐었다. 반해서 정신없이 거듭 보았던 영화*도 생각났다. 지나간, 사라진, 남겨진 모든 것들이 꽤 슬픈 날이다.
* <말할 수 없는 비밀> Secret(不能說的秘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