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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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주말마다 나갈 일이 있었고 그 시간들 역시 대부분 좋고 원하던 일이긴 했지만 피로감은 어쩔 수 없다. 몸이야 늘 불편하다지만, 문제는 신경이 지쳐 늘어진 기분... 정신이 사나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마저도... 못 쉬었으니 못된 성격이 튀어나올 거야, 라는 자기암시일 가능성이 높지만... 어쨌든 심신에 힘을 다 빼고 숨만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은 더욱더 간절하게 하루 종일 내밀하고 싶은 날이다. ‘말도 걸지 마시오(은밀하고 내밀한 바람...).’

 

남다르고 각별한 경험을 하는 데는 자기만의 견고한 정체성이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다. 이러한 규칙에 수반되는 약간 의외의 귀결은 바로 혼자서 여행하는 편이 낫다는 사실이다. 둘이서 여행하게 되면 벌써 동일한 경험을 나누어 가지기 위하여 자신의 어느 한 몫을 포기하게 되며(...)”

 

모든 종류의 여행에 이런 면이 있다고 믿는다. 그건 이라는 유일하고 긴 여행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인간관계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정답이 없고 수많은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확실하거니와, 내가 만약 산책의 동반자를 찾는다면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교감하는 어떤 내밀함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 결과 나의 산책은 분명 더 진부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취미는 자연을 멀리함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산책함으로써 얻게 되는 저 심오하고 신비한 그 무엇과는 작별인 것이다.”

 

산책, 걷기는 99% 효과있는 나의 비상약이자 상비약이다. 걷다 보면 몸의 대부분의 기능이 보다 안정되고 소위 정상 가동되는 효과도 있으며 더 나아가 호르몬이 안정되고 체온도 리셋되고 더불어 갖가지 쓰레기 같던 감정도 말끔해진다.

 

문제는(?) 산책의 목적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산책은 침묵 명상을 동반한 걷기이며, 말끔해진 정신으로 혼란한 생각을 좀 더 깊이 만나보는 것이다. 간절하게 그런 고요와 혼자됨을 원하는 시간에, 갑자기 어디선가 원하지 않던 음악이나 라디오소리가 들리면, 큰 목소리의 전화통화가 들리면, 거침없는 호탕한 수다와 웃음이 들리면…….

 

소로가 언급한 산책함으로써 얻게 되는 저 심오하고 신비한 그 무엇은 분명 다른 것이나, 나는 이런 순간마다 알지도 못하는 이들의 생각과 태도와 행동을 이해해보려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치열한 사고 경험을 한다. ‘만약 저 사람이 난치병에서 회복한 이라면, 아주 힘든 시절을 견디고 이제 막 운동을 시작한 거라면, 생계를 책임지는 일을 오래하다 이제 조금 자기 시간이 난 거라면, 무척 그리웠던 헤어졌던 형제자매 친구를 만나 행복한 거라면......’

 

오해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애써 달래며, 주변을 저 정도로 의식하지 않는 이들은 배려를 모를 거라는 생각을 내치며, 계획에 없던 수행을 한다. 주위에 보이는 나무와 풀과 꽃과 물과 하늘과 구름과 곤충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미움이 원망이 사라진다. 산책은... 걷기는 정말 최고의 명약이다.

 

오솔길은 물론이지만 세상의 모든 길은 땅바닥에 새겨진 기억이며 오랜 세월을 두고 그 장소들을 드나들었던 무수한 보행자들이 땅 위에 남긴 잎맥 같은 것, 여러 세대의 인간들이 풍경 속에 찍어 놓은 어떤 연대감의 자취 같은 것이다. 그리로 지나가는 행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지극히 작은 서명이 거기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찍혀 있다.”

 

길이란 인간들이 지나가든 말든 아무런 관심이 없는 식물과 광물의 세계 한복판에 남겨진 흙의 상처다. 너무나도 짧은 한순간 무수한 발자국들이 찍혀진 땅바닥은 인류의 징표다. (...) 해가 날 때 약간의 먼지, 비가 왔을 때 약간의 흙탕은 삶의 질 일부를 이룬다.”

 

운전을 하게 되면... 바람도 못 느끼고 비도 못 받게 된다. 그렇게까지 우리가 사는 일상이 보호받을 일인가 싶었다가, 이건 그냥 물품처럼 이리저리 실려 다니는 모욕적인 삶의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시동을 걸고 어딘가로 떠나는 오랜 운전을 하고 싶은 욕구가 불쑥이기도 하지만 차근차근 버려야할 기이한 욕망이라 믿는다.

 

하루 종일 내밀하고 싶지만, 잠시, 비밀스런 야생 동물처럼 조용히 산책을 즐기고 오고 싶다.

 

선물 받은 책, 오래 가까이 두고 싶은 책, 아까워서 조금씩만 맛볼 것이다. 오늘은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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