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의 사랑과 긍지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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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파 에세이스트 브래디 미카코의 신작에다 경애하는 정희진 작가의 추천이면 독서 탐심이 솟는다영국의 노동 계급계급 투쟁현재에 이르는 사회의 면면을 아일랜드계 영국인과 결혼한 일본인 작가의 시선으로 오래 살핀 예리하나 다정한 인간학 에세이와도 같다.

 

부시의 푸들이라 불리던 블레어가 총리인 시절에 영국에서 여러 해 살았다블레어에 대한 평가가 하락할수록 영국 노동당도 함께 우스워지다 내리막길로 접어든 시절이 아닌가 싶다한국에서는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되었고 아라크 침공이 시작되었다런던 반전 시위에 천만 명 이상이 모였다.

 

뭔가 사회과학대중서처럼 기억을 복기하며 읽게 될 거란 짐작은 꽤나 벗어났다그러고 보니 마지막 방문이 벌써 여러 해... 사는 것과 들르는 것은 또 다르니... 그러니까 나는 십년 이상의 영국 사회의 변화를 모른다현재도 잘 모른다대략 안다고 오해했다.

 

한국처럼 전체주의적 요소가 많은 사회에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꽤 다르다기본적으로 개인주의가 일상이고 범죄가 아니면 타인에게 간섭을 받을 일도 별로 없는 사회의 사람들은 때론 지나치다싶게 특징적인 고유함이 있다overcharacterised.

 

그래서 나는 내가 만난 사람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생생하고 다양한 기억을 갖게 되었다그러니까덩어리로 설명할 수 있는 세대란 것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당파에 이르면 보수적이라 할 만큼 변화가 적은 것도 특징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노동자로서 겪은 공통의 경험이 이들을 같은 계급으로 만든다. (노동 계급의 세력이 약해진 현대에 바람직한 노동 계급의 모습이란 다양한 인종젠더성적 취향종교생활습관과 문화를 가진그럼에도 돈과 고용이라는 하나의 점에서 이어지는 집단일 것이다.”


 

영국이든 한국이든 아저씨로 타인을 지칭하기엔 나는 스스로 꼰대 연령대이다내가 내 세대의 사람들과 무엇을 공유하고 무엇에 불화하는지를 아는 만큼 누구나 그럴 것이다목소리 큰행동이 눈에 띄는 이들을 부풀려 과장하고 이용해 먹는 자들은 뚜렷한 목적을 가졌으며광기가 휘몰아치면 그렇지 않던 이들도 자신이 속할 집단을 서둘러 고른다.

 

가난한 계급의 분열을 조장해 서로 싸움을 붙여두면정권과 정치인들 쪽으로 분노를 돌리지 않으리라 생각한 위정자들의 지혜

 

자신이 하는 일이 없어질 것라는 불안은 아저씨들만의 현실이 아니다궁지에 몰린 것은 짐작보다 더 다수의 사람들우리일 것이며이는 빈부격차가 더욱 극심해지는 모든 국가와 사회의 현실일 것이다.

 

그나저나 도서관을 폐쇄하다니... 영국 현실이 내 상상보다 더 낯설어진지 오래인가... 영국에 사는 친구는 감정적인 폭발을 암시한 적이 없어 나는 주고받는 안부에서 이 책에 담긴 분노와 두려움에 가까운 어떤 감정을 간접적으로도 느껴본 적이 없다.

 

판데믹 시절상대적으로 안전한 격리생활을 할 수 있었던 한국인인 나는 어떤 감각기관이 퇴화된 것도 같다이민자나 이방인으로서 예민하게 느끼는 차별증오저항감 같은...

 

내가 만난 다정하고 단단한 사람들이 다 사라졌다고는 믿지 않는다다들 자본의 숨 가쁜 변모에 놀라고 당황하고 그럼에도 가까이 있는 이들을 사랑하고 이 시대도 반드시 살아남을 힘을 기르고 있지 않을까.

 

독자로서 나는 중장년의 슬픔에 공감하며empathy 읽는지 다른 무언가에 동조한 것인지 내내 헷갈리며 읽었다영국 사회가 겪고 있는 세대 갈등에 감염된 듯외면한 내 삶의 갈등에 먹혀 들어가는 듯.

 

펼치면 꼼짝 없이 다 읽게 되는 엄청 재미난 책에 대한 감상글이 이렇게 무겁고 어둡다니... 심심甚深한 사과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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