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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의상 박물관
윤혜숙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5월
평점 :
특별히 패션에 대한 관심과 안목이 있었던 적은 없다. 예전에 선호했던 브랜드들은 생각이 난다. 간만에 떠올리니 급 궁금해지기도 한다. 패스트 패션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통계 자료들에 놀라고 먼 나라에 수출이란 이름으로 내다버린 옷쓰레기산을 보며 죄책감을 느낀다.
이 책은 그런 복잡한 심정에도 불구하고 복식에 관한 역사, 통사로서 만난 백과사전과도 같은 소장 가치가 있는 충실한 책이다. 대개 하루만에 후룩 읽고 마는 게 독서 버릇인데, 쪼개어 사진과 내용을 천천히 즐기며 보았다. 역시 역사는 늘 재밌다.
500쪽이 넘는 6부 구성인데, 유럽의 패션 역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모르는 내용이 많아 더 재밌게 읽었다. 주제사가 역사서의 대세란 느낌이 날로 강해진다. 고대부터 비잔틴, 중세, 근세와 근대 그리고 현대까지 이어지는 내용이 이해와 정리를 돕는다.
털과 가죽을 버리는 방향으로 진화한 인간은 기후의 변화에 따라 몸을 보호하기 위한 의복이 필요했고, 계급 사회를 이루면서 계급을 표시하기 위한 의복도 필요해졌다. 다른 동물들이 털과 깃털과 여타의 신체적 특징들을 생식을 위한 경쟁 요소로 활용하는 것처럼, 그런 기능의 의복도 필요했다. 즉 의복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분화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가졌다.
현대에 와서는 한 가지 이유가 아닌 다양한 취향을 요인으로 패션이 탄생하는 듯하지만, 실은 고래의 원인들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욕망의 근원은 늘 생존과 번식에 있다. 복식에 권력과 욕망이 투영될수록 희소성을 찾게 되고, 차별과 구분으로 사회가 세분화될수록 복식도 그러했다.
모르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더 낯설어 더 흥미로웠던 내용을 극히 일부 기록해본다. 방대한 내용이라 충분히 소개할 수가 없어서 아쉽다.
1.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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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생존에 유리한 지역이라 남성용으로 간단한 의상이 일반화되었다. 그에 비해 여성의 의상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 이유는 여성의 계급이 높아서일까, 여성이 의상으로 매력을 표현해야 생존에 유리해서였을까.
2. 고대 그리스 에트루리아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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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문명의 의상이지만 현재도 그런 것처럼 권력과 문화는 중앙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자연환경도 날씨도 격차가 컸을 텐데, 교류가 활발했다는 역사 기록처럼 활동성이 보장되고 보호기능이 뛰어난 부츠가 특징적이다. 장식, 즉 차별화를 위한 금속세공이 발달한 것도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다.
3. 르네상스 이탈리아 친퀘첸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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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르네상스 시대의 양식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16세기 시대상도 잘 드러난다. 미술 작품들을 살펴보면 당시의 의상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나 초상화에서 드러난 계급과 신분에 따른 의상 양식이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저자가 다룬 예술가들은 누구나 이름은 알 라파엘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대표적인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들이다. 작품들도 꽤 익숙한 것들이 많은데 채색화라서 의상에 반영된 색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4. 루이 14세 로코코 비더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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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더마이어biedermieer는 어원에서 디자인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독일어이고 ‘성실하고 정직한 마이어씨’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다. 즉 화려함이나 장식적인 요소보다는 기능성과 활용도가 높은 단순한 디자인인 경우가 많다.
검소하고 보수적이고 변주가 적고 그러면서도 자기주장이 강한 중산층, 즉 부르주아의 삶의 양식을 표현하는 스타일이다. 유행한 지역과 시대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것을 거듭 절감하는 내용이다.
타인의 도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경제적 위치는 개인주의적인 양식을 추구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을 것이다. 사회가 확대됨에 따라 복잡한 사회문제에서 눈을 돌려 개인적 일상에 침잠하는 그런 시대적 조류도 지칭하는 흥미로운 표현이다.
5. 셔츠shirts 린넨linen
유래를 처음 배웠다. 갑자기 발명된 것이 아니라 튜닉이 변형된 것이었는데 더블릿doublet에서 어떻게 셔츠로 변했을까. 저자가 아주 다양한 사진 자료를 담아 주어 한참 즐겁게 보았다. 무척 재미있었고, 덕분에 전시회나 미술관 방문에는 의상을 좀 더 잘 보는 안목이 마련될 지도.
서양 사극(?)을 보면 린넨으로 만든 직물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표백과 염색을 안 한 점이 예전 조선시대 백의를 입은 평민들과 유사하다. 물론 현대에서 구할 수 있는 린넨 제품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아시아와 동유럽 지역이 원산지인 린넨의 원료인 아마가 무척 활용도가 높은 직물이었던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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