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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메디슨 - 살리려는 자와 죽이려는 자를 둘러싼 숨막히는 약의 역사
송은호 지음 / 카시오페아 / 2022년 6월
평점 :
역사서는 지루한 줄 모르고 읽는다. 거대한 미션처럼 느껴졌던 통사 이외에 근래에는 주제사 책들이 많아져서 만화보다도 재밌는 경우도 많다. ‘약/독약’의 역사이니 얼마나 흥미진진할 것인가. ‘살리려는 자와 죽이려는 자를 둘러싼 숨 막히는 약의 역사’가 부제이다.
저자도 아주 흥미로운 분이다. 현직 약사인데, 건축학과, 생명공학과, 철학과, 약학과 등 여러 전공을 공부했다. 그 중에서도 무슨 접점일까 싶은 건축학이 특히 눈에 띈다. 세계사를 바꾼 약들이라니, 읽기 전엔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만 떠오르는 독자로서 설레며 펼친다.
“영국 추리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는 약사의 경험을 살려 독약이 등장하는 소설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사고사와 자살보다 질병으로 사망하는 일이 가장 많다는 것이, 일종의 위안이 된다. 최근에는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그 숫자가 더 커졌을 것이 분명하겠지만. 그러니 여전히 인간은 질병과 싸우는 중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무기로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최초에는 혹은 어떤 시절에는 시행착오를 거치느라 잘못된 개념으로 발견된 지식 정보의 부족으로 인해 여러 유해한 약들도 많았다. 그런 분위기에 매몰되지 않고 반대하고 나선 인물이 있다는 점은 늘 역사적으로 흥미롭다.
분야가 아니라 과문한 파라셀수스Paracelsus, Theophrastus von Hohenheim 이야기를 재밌게 배웠다. 약의 역사와 연결이 될 거란 생각도 못한 인물들을 만나는 재미도 크다. 역사 속 열두 장면 모두 순식간에 읽혀서 살짝 아쉽다.
‘약’이란 단어에서 내가 떠올리는 효용과 이미지는 질병 치료이다. 가장 협소한 의미와 활용일 것이다. 평소엔 의식하지 못하다가, 그건 기본이고, 역사 속에서 ‘약’이 담당한 다양하고 격렬한 역할들을 만났다. 뇌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예술가의 영감을 부르기도 하고, 군인을 광기로 이끌기도 하고…….


모든 우연을 서사로 만드는 것이 인간의 뇌의 기능이라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드라마틱한 일들을 즐기는 것에는 잘못이 없다(고 믿는다). 인간은 참 약해서, 도움이 되고 힘이 될만한 건 오히려 잘 알아보는 능력을 진화시킨걸까.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배운 내용을 기록한다.
“율리아 아그리피나는 아들 ‘네로’를 황제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남편이자 황제였던 클라우디우스를 ‘투구꽃’으로 만든 독약으로 죽였다.”


“소크라테스가 마신 사약이 가르쳐준 교훈은 제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이어졌다. 결국 삶이 아닌 죽음으로써 더욱 가치 있는 가르침이 됐고, 그가 마신 사약은 그리스 철학과 함께 서양 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도화선이 됐다.”


“11세에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고, 마찬가지로 험난한 왕으로 사는 삶을 살아가게 된 정조. 그 역시도 아버지와 같이 우황청심원을 애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가슴에 화가 쌓이는 삶은 사도세자나 정조나 다르지 않았나 보다.”

“약물 알레르기 증상은 스트렙토마이신 투여를 중단한 후 금세 호전됐으나, 문제는 완치되지 않았던 결핵이 재발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방법이 없었다. (조지 오웰)그는 남은 스트렙토마이신을 병원에 기부했고, 기부한 약은 결핵에 걸렸던 두 의사의 아내를 치료하는 데 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