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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에서 탈출하기 ㅣ 탈출하기 시리즈
주디 앨런 도드슨 지음, 황인호 그림, 이섬민 옮김 / 스푼북 / 2022년 5월
평점 :
예전에 파주가 고향인 선배가 집이 침수된 상황을 생생하게 들려준 적이 있었다. 살던 집이 지붕 빼곤 모두 잠겨버리는 일에서 다시 시작하려면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경험하지 못한 재난을 짐작해보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극한기후현상extreme weather는 책으로 배웠다. 가능한 일이라 납득하긴 했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 일이었고 남의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시절을 목격하며 살고 있다.
호주의 대형화재는 악몽처럼 끔찍했고 이후에도 변함없는 인류는 절망스러웠다. 판데믹으로 혹시 기회가 생길까했지만 이미 배출된 탄소와 충분히 줄지 않은 이어지는 인간의 오염 활동은 점점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이 책은 내가 모르던 2005년 8월, 뉴올리언스의 80%를 침수시킨 카트리나 허리케인 재난을 다뤘다. 존경스러운 활동을 하며 사는 저자의 책이다. 읽게 된 것을 감사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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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재난 대비 훈련을 하고 가능한 예비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습관이 된 훈련이 어떤 순간에 부상을 막고 목숨을 구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재난의 규모가 커지만 이런 노력들이 무용지물이 된다. 집을 잃는 것은 물론 가족과의 아픈 이별도...
“아빠가 데메리 아저씨를 구하려면 고무보트를 놓아야 했다.”
둘러보면 모두 인간의 힘으로 만든 문명... 이 모든 것을 이룩한 인간은 한편으로는 어리석은 결정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이익을 추구하느라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기도 한다. 뉴올리언즈 정부 역시 허리케인을 막기에 둑이 약하다는 전문가의 지적을 무시했다.
더 큰 문제는 그 경험을 통해 배우고 반복하지 않는 일인데... 과연 그런 방식으로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 당국과 언론과 사람들이 힘을 모아 바꿀 수 있는 일인데 해피 엔딩이 그리 흔하지도 당연하지도 않다.
절차가 있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절체절명의 시간에는 늘 그렇듯 정부 당국의 도움은 부재한다. 대신 시민들이 서로를 구한다. 2005년 뉴올리언스의 상황이지만 문득 기억이 떠오르는 일상의 수많은 시민들이 계신다. 간혹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분들의 소식을 들으면 냉소와 절망이 잠시 흩어진다.
“눈앞에 벌어진 일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런데... 인간을 한계로 몰아붙이고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건 강력한 재해보다 지속되는 어려움이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들이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문명 이전의 힘의 논리가 작동하게 마련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다. 어렵고 예외적인 일이라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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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재난상황을 살고 있고 해법과 노력은 충분하지 않다. 나는 매일 절망하고 깊이 좌절하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겠단 결심을 자주 갱신한다. 살아 있는데 포기하는 건 쓸모없는 일이긴 마찬가지라서.
인류는 스스로 초래한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지구 환경, 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격변의 시기를 탈출할 수 있을까. 전쟁, 폭력, 차별, 혐오, 갈라치기는 기세등등하니 결국 탈출하지 못하게 될까. 2005년의 기록이지만 과거가 되지 못한 재난을 만나 희망과 절망을 번갈아 고민해본다. 어린이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살아갈 현실을 어떻게 느끼고 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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