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창비시선 476
이정록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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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이 되고 나도 모르게 멈췄던 숨을 뿜어내기 좋은 제목이다. 그럴 때가 있지... 누군가의 육성으로 나도 위로 받았던 오랜 기억이 돌아왔다. 이 말은 그래서 다시 살기로 한 사람들의 멈춤과 휴식의 디딤돌 같게도 들린다.

 

내가 읽을 수 있는가 없는가로 시를 평가할 생각은 없지만, 막막한 암호 같은, 망막까지만 들어오고 뇌에 도착하지 않는 시를 만난 절망(?)을 이정록 시인의 시에서는 느껴본 적이 없다. 예전에도 지금도 편하게 읽을 수 있어 좋다. 자세도 불량하게(?) 조금 풀린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나 시간은 하나도 없지만, 늘 그 풍경이 잔잔하다. 가장 아름다운 꽃잎이 나뭇잎이 졸졸졸 얕은 개울물 위에 동동동 떠내려가는 한가하고 평화로운 세계가 떠오른다. 덕분에 나도 잠시 안전하고 잠시 두통이 사라지고 잠시 불안도 견딜만해진다.

 

감정의 평균

 

(...)

꽃잎처럼 달아오른 가슴 밑바닥에서

그 어떤 소리도 오라오지 않도록

천천히 숨을 쉴 것

 

(...)

먼저 이별을 준비할 것

땡감처럼 바닥을 치지 말고

상처없이 감꽃처럼 내려앉을 것

 

(...)

 

 

얼핏 온기가 낮게도 느껴지지만 다정한 염려로도 느껴진다. 언제나 진심을 전하는 일은 어려운 법이다. 더구나 누구의 완전한 관리도 받지 않겠다는 감정을 다루는 일은 더 그러하다. 오래 전 떨리면서도 방향을 가리키는 걸 잊지 말라던 나침반 선물을 주던 스승이 그립다.

 

 

눈물의 힘

 

눈물이 나면

왼손으로 슬픔을 덮었습니다

왼손으로 설움을 훔쳤습니다

 

웃음이 터지면

오른손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오른손으로 웃음꽃을 가렸습니다

 

왼손이 덜 늙었습니다

 

 

회의하나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가 지금의 나의 최선이라서 크고 작은 상처들은 그치질 않는다. 누구나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무지개를 기억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 있는 동안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멈출 수가 없다는 필연을 받아들이고 싶어진다.

 

어제도 오늘도 그럴 때가 있는 거지. 다들 그럴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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