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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의 기술 - 느낌을 표현하는 법
마크 도티 지음, 정해영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22년 5월
평점 :
신기하게도 이 책을 읽다가 아주 오래 전 제임스 힐먼James Hillman의 ‘융 심리학’ 강의를 용감하게 들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힐먼은 ‘우울하다depressed'란 말은 발화자의 상태에 대해 아무 정보도 알려 주지 않는 표현이라고 했다.
우울한 사람의 상태를 전달하지도 못하고 그 말을 듣는 이가 상대의 상태를 짐작하게 하는데 도움이 안 되니, ‘우울하다’란 생각이 들 때 몸의 상태를 표현해보라는 것이었다. 팔 다리가 무겁다거나, 머리가 아프다거나, 체한 느낌이 든다거나, 뜨거운 눈물이 차오른다거나...
다들 바쁘(다고 하)고, 휴식과 권리가 보장되는 것보다 책임과 감당해야할 일이 많은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볼 시간도 정신적 여유도 없어서, 혹은 자신을 솔직하게 대면하는 일이 벅차서 공허하고 추상적인 표현들로 그 모든 것을 압살하는 지도 모른다.
중요한 모든 건 좀 더 나중에, 이러저러한 여유가 생기면... 그렇게 살다 병들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나중이란 영원히 오지 않을 시간이니까. 글이 ‘우울’해진다. 하고픈 말은 그렇지 않아도 불완전한 ‘묘사’를 추상적인 상태로 두는 것이 무척 공허하다는 공감이다.
섬세하고 구체적인 묘사는, 그 자체로 능력이긴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경험하지 않은 독자조차 순식간에 그 시공간에 초대하고 느끼게 할 수 있다. 시인의 몇 줄 묘사를 읽고 내가 물고기가 된 듯, 낚시꾼이 되어 물고기를 바라보는 듯, 여러 감정이 오가고 후각이 예민해진다.
나는 엄청난 물고기를 잡아서
배 옆에 매달아 두었다
물에 반쯤 담근 채로
낚싯바늘이 입 한쪽에 박힌 채로.
물고기는 싸우지 않았다.
싸운 적이 아예 없었다.
(...)
읽고 쓰는 행위의 분량과 꾸준함과 비례하는 법 없이 갈수록 짧아지는 내 어휘의 목록을 애통해하며, 지극히 실리적인 이유로 어휘를 늘리고 표현을 다듬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서 읽고 싶었던 책... 얄팍한 목표를 꾸짖듯 추억과 감정이 크게 일렁인다.
“모든 출중한 시는 고유한 지각적인 특징을 세상에 새긴다. 보는 것을 표현하려는 비숍의 노력은 궁극적으로 보는 행위를 하는 자에 대한 정밀한 묘사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특유의 감성이 있다. 시는 성문이다. 출중한 시에서는 특정한 누군가가 말을 하면 그의 존재가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