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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소설 ㅣ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장류진 외 지음, 백순구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2년 3월
평점 :
아무튼 고정 수입과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 그렇게 흥성거리는 적대가 채워진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런 게 늙는 것이라면 일부러 영양과 에너지를 투입해 신체 항상성을 유지하며 나이들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겐 이미 미워하는 사람이 넘쳐 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싶은 인간들도 참으로 많으니까. 하지만 부엌 식탁에 앉아 캔 맥주를 앞에 두고 그런 인간들을 우울하게 욕하고 있으면 모친인 해경은 그러지 말라고 했다.”
“결국 다 죽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 미워할 사람이 없어.”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니, 그런 건 염세일까, 완벽한 처세일까. 104
<모리와 무라> 김금희
우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구는 그 많은 행성들 중 어쩌다 생긴 하나에 불과했고,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행성이었으며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별 상관 없는 행성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안에서 존재의 이유조차 알 수 없도록 우연히 생긴 생명체였다. 사랑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은 인간이다. 이 땅을 외롭게 만든 것은 오롯이 인간의 짓이라는 걸 상기할 때마다 나는 그저 이 행성을 떠나야만 그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223
<사막으로> 천선란
여행에세이를 모은 책이란 소개에 속았다. 룰루랄라 일상의 무게를 벗어 버리고 잠시라도 가볍고 설레며 낯선 곳을 경험하는 그런 여행이 아니었다. 동시대의 이 멋진 작가들이 여행을 계기로 인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 시공간에서 끌어올려진 모든 문장이 삶 자체의 무게를 지녔다. 다른 방법을 몰라... 울면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