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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 미술관에서 명화를 보고 떠올린 와인 맛보기 ㅣ Collect 14
정희태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5월
평점 :
읽는 중...
갑갑하던 시절, 파리 현지에서 루브르 미술관을 방문해서 도슨트 라이브 방송을 해주신 <90일밤의 미술관 루브르> 책의 저자들 중 한 분이 정희태님입니다. 잠시 현실을 떠나 찬란하고 즐거운 시간을 덕분에 보냈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책의 만듦새와 관련 지식을 전달하는 유쾌하고 친절한 방식은 무척 인상적이고 고마운 경험이었습니다.
와인과 미술은 열심히 읽고 배워도 잘 늘지 않는 분야입니다. 저만 그럴 수도 있지요. 워낙 방대하고 지식량이 많기도 하고 경험을 통해 배운 바를 확인하는 것까지가 확실한 자신의 배움이 되는 것이라 그런 듯도 합니다.
비슷비슷한 입문서와 소개서를 적지 않게 읽었는데, 이 책은 독특하고 매력적입니다. 와인과 미술을 함께 한 작품씩 최고의 가이드를 만나며 찬찬히 배워 나가는 기분입니다. 당장은 작품의 원작을 보고 떠오르는 모든 와인을 찾아 맛 볼 수 없다고 해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어느 날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는데 문득 샹볼 위지니라는 와인이 떠올랐습니다. 그림에서 전해지는 꽃향기와 따스함, 연못에 고인 물의 습함이 피노 누아로 만든 샹볼 뮈지니 와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와인을 들고 모네가 그림을 그린 장소에 찾아갔습니다. 마치 모네가 된 것처럼 모네가 보았을 풍경을 바라보며 이 와인을 마셨습니다.”
“똑같은 식물의 열매인 포도인데도 품종에 따라 와인에서 느껴지는 향과 맛이 달라지듯, 그림 역시 사용한 물감에 따라 작품에서 풍기는 느낌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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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와인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방식도, 다른 이야기들로 넘어가는 과정도 무척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목넘김을 의식하지 못하는 매끄러운 음미 같습니다. 매일 읽고 매일 마시려면 조절을 잘 해야겠습니다. 즐거운 고민입니다.
“와인의 맛을 응축시켜 풍미와 향미를 폭발시키는 와인 양조 방법이 있듯, 물감을 듬뿍 발라 응축해 표현함으로써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임파스토 미술 기법이 있습니다. 응축되어 강렬한 힘이 생긴 그림과 와인을 만나 진하고 깊게 감동해보길 바랍니다.”
“9대째 리델사를 물려받은 클라우스 요세프 리델Claus Josef Riedel은 유리 모양에 따라 사람들의 와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최초로 알아냅니다. 이후 리델사는 불필요한 장식을 없애고 (...)”
“와인의 색은 시간이 흐름과 함께 숙성되면서 병 속에서 천천히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색은 첫 모습이 다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하나의 색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르네상스의 영향이 적게 미쳐서 중세의 모습이 많이 남은 도시나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도시, 혹은 고풍스런 유럽의 어느 도시라도 일조량에 따라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작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모네의 연작을 보며 우리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늘 기억하며 살지 못하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똑같은 순간이란 없다, 그러니 내가 보는 것, 아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고유한 무엇을 가지고 있을까요
“시간을 자신의 화폭에 화려한 색으로 담아낸 화가 클로드 모네, 그리고 색의 변화로 시간을 담아내는 와인. ‘시간은 모든 것을 숙성시킨다’라는 말이 있듯이 (...)”
늙고 분해되고 변질되는 것 말고... ‘숙성’이란 단어가 나쁘지 않습니다.